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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디자인을 입다 - 포뮬러 1 vs 포뮬러 E / 조현신(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교수

  • 작성일 20.04.07
  • 작성자 박윤진
  • 조회수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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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뮬러 1 vs. 포뮬러 E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로, 2020년 5월
3일에 서울 잠실 경기장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던 ‘2020 서울 포뮬러 E 그랑프리’ 경기가 취소되었다.
포뮬러 E는 국제 전기차 챔피언십으로 2014년 9월 베이징에서 첫 대회가 열렸다. 카 레이싱 중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 포뮬러 1(F1)이 굉음과 공해, 연료소비, 과도한 경비 등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자, 새롭게 선보인 포뮬러 E의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극적인 스포츠, F1
지구상의 어떤 스포츠도 F1 만큼 막대한 자본과 몰입도, 극적인 장면을 만들어 내는 경기는 없을 것이다.
 뜨거운 열기가 올라오는 서킷 출발점에 빨간 출발램프가 켜지는 순간 드라이버는 방염재의 레이싱 수트, 헬멧, 목 지지대 등의 안전 장비로 몸을 꽁꽁 싼 채, 수많은 계기판을 제어하면서 총알처럼 출발한다.
그는 40~50℃를 오르내리는 콕핏에 앉아 1시간 반에서 2시간 동안 달려야 한다. 집중력, 속도, 코너링 때의 긴장과 함께 지구력 또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이뿐인가. 경기 도중 극도의 속도로 마모된 타이어 4개를 약 20여 명의 정비사들이 전광석화처럼 바꾸는 장면 또한 대단한 볼거리다. 가장 빠른 정비팀은 현재 2.9초까지 기록을 갱신했다고 한다. F1 머신은 양산 승용차 200마력의 4배인 800마력의 힘을 뿜어내고, 1대당 100억 원을 넘나들며, 자동차 2대로 운영되는 한 팀의 한 해 예산은 3,000억 원이다. 300km가 넘는 속도로 질주하며, 1950년에 시작되어 현재까지 경기 중에 사망한 레이서는 34명이다.

 F1 타이어 전속업체        마리네티의 
     피렐리의 로고            ‘자유시’(1919)

기술과 속도에 열광하다
화석 엔진의 힘으로 달리는 자동차나 기차는 근대기 유토피아의 가장 강력한 상징이었다. 달리는 말의 속도감만을 체감했던 인류는 자동차의 힘을 마력으로 측정했고, 디자이너와 예술가들은 작품 속에서 그들의 다이내믹을 찬미했다. 특히 이태리 미래주의 양식은 기술과 속도, 금속을 숭배하고 이들이 뿜어내는 움직임의 구현을 최대 목표로 삼으면서 건축, 잡지, 패션, 음식, 회화 등 전 분야에서 그것을 이루어 냈다. 미래주의는 다혈질 시인 마리네티가 자동차를 타고 달리다가 자전거를 피하면서 도랑으로 처박혔다가 일어나는 순간 탄생했다고 한다. 그가 1909년 2월 20일에 르 피가로지에 기고한 최초의 미래주의 선언문 중 한 문장은 이렇다. “파이프로 덮개를 장식한 경주용 자동차_ 포탄 위에라도 올라탄 듯 으르렁거리는 자동차는 사모트라케의 니케보다 아름답다”. 찬란한 서구 고전미학을 상징하는 승리의 여신 나이키가 근대의 기계미학을 상징하는 자동차에게 그 왕좌를 빼앗긴 것이다. 그가 디자인한 ‘자유시’ 속에서 자동차가 달리면서 길게 뻗어낸 P자의 형태가 피렐리의 로고와 닮은 것도 재미있다. 이탈리아의 피렐리는 1872년 창설되어 현재까지 포뮬러 1의 공식 타이어 업체를 유지하는 타이어 전문회사로, 2015년도에 중국기업에 매각되었다.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이 시대가 주는 변화를 작품으로 구현할 때, 일상에서는 죽음을 불사하면서도 최고의 속도와 기술력을 놓고 경쟁했다. 1899년 최초로 시속 100km를 넘긴 차는 전기차 ‘자메 콩탕트’로 형상 자체가 탄환이다. 달리는 탄환에 올라탄 까멜 주나치의 목 뒤로는 기다랗고 붉은 스카프가 걸
려 있어 속도의 쾌감을 보여준다. 포스터 역시 속도감과 역동성을 표현하기 위해 사선 구도를 취하고, 열광하는 대중 위에 펄럭이는 깃발을 그림으로써, 2차원 평면에서 운동감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집단 경기장에는 대부분 도우미 여성이 등장하는데 포뮬러 1의 서킷에도 역시 ‘그리드 걸’이라 불리는 홍보 모델들이 유니폼을 입고 나와 뇌쇄적 관능을 표출한다. 이 그리드 걸들은 2018년 경기부터 여성의 상품화, 비하 논쟁 등으로 자동차 연맹의 공식 입장을 통해 더 이상 등장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싱가폴, 러시아, 오스트리아 등은 계속 그리드 걸을 세우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레이스
이런 와중에 포뮬러 E가 탄생했다. 포뮬러 1에서 포뮬러 E로. 무엇이 바뀐 것일까? 화석연료가 내는 굉음의 질주에서 전기 에너지의 소리 없는 질주로 바뀌었다. 너무 소리가 없어 일부러 데시벨을 높였다고 한다. 색채가 바뀌었다. 색채는 형태에 앞서 가장 먼저 감각적으로 포착되는 디자인 요소이다. F1의 자동차며 광고판이 주로 정열, 광염을 상징하는 붉은색과 노란색 등의 원색으로 원시적 힘이 연상되었다면, 포뮬러 E의 색은 정적, 평화, 깨끗함을 상징하는 파랑과 중간 톤의 채도가 높은 색이 많다. F1의 스폰서업체가 정유 회사, 음료수 회사, 일반 자동차 회사라면, 포뮬러 E의 스폰서는 통신 회사, 수소차 회사, 첨단기술 회사 등이다.(이제 포뮬러 1에는 더 이상 스폰서가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섹시하고 화려한 그리드 걸들은 사라질 것이다. 대신 관중이 실시간 투표를 통하여 포뮬러 E의 드라이버 2명에게 에너지를 더 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게임 성격이 가미되었다. 충돌을 할 경우 F1의 자동차들은 붉은 포염 속에서
솟구치는 장면을 보여준다면, 포뮬러 E는 아직까지 범퍼링을 한다는 평을 들을 정도이다. 관중들이 체감하는 시각성, 물질성이 현저하게 바뀐 것이다.

 

                     토리노 자동차박물관에 전시 중인                          인디애나폴리스 경주 포스터
                              ‘자메 콩탕트’(1899)                      
                      (1900년대 초)

포뮬러 E 국제 홍보대사, 방탄소년단

2019년 다큐멘터리 <포뮬러 원:본능의 질주>에서 한 드라이버는 말한다. “죽음은 두렵지 않다. 아드레날린의 극한적인 방출과 경쟁이 좋을 뿐이다”라고. 드라이버들 또한 이렇게 원색적이며 대담하다. 서울 포뮬러 E의 홍보대사 방탄소년단은 어두컴컴한 실내에서 검은 정장과 흰색 레이서 수트를 입고 등장한다. 언뜻 우주인이나 스마트한 과학자들처럼 보인다. 그들은 차분하게 이야기한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레이스, 친환경 에너지, 지구를 바꿀 레이스를 한다”고. 하지만 이렇게 슬로건과 색채, 총체적 디자인 플래닝이 원색적인 양의 빛에서 차분한 음의 빛으로 바뀌었다 하더라도, 현재의 물리력을 뛰어넘어 질주하고 그것으로 승자를 가리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불변인 듯하다. 그리고 그 원초적 욕망이 고대 아테네와 로마의 전차 경주에서 근대 승마 경주로, 포뮬러 1에서 포뮬러 E로 당대의 기술과 형상으로 디자인되어 펼쳐질 뿐이다.

글을 쓴 조현신은 현재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대학원에서 디자인 역사
와 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의 일상에서 친근하고 낯익은 한국 디자인
역사를 연구하고 있으며, 특히 근대기에 형성된 한국적 정서의 디자인화
에 관심이 많다. 2018년 『일상과 감각의 한국 디자인문화사』를 출간했다.

 


※ 게재한 콘텐츠(기사)는 언론사에 기고한 개인의 저작물로 국민대학교의 견해가 아님을 안내합니다.

※ 이 기사는 본교 소속 구성원이 직접 작성한 기고문이기에 게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