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하다. 대통령의 현 시국에 대한 절박한 심정에 접하면서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막중한 나라 일에 대해 대통령이 연일 국민에게 호소하는데 사안의 무게를 온몸으로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불안하다.
여소야대가 문제라고 한다. 한국 정치를 비정상적으로 만들고 있고, 이를 정상으로 되돌리려면 무언가 대안이 나와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은 그 대안에 대해 아직 말할 수 없다고 했지만 이미 '설'은 무성하다. 정책 공조나 정계 개편 정도의 대책이라면 정상적 '풍파(風波)'라 치고 참아낼 수 있겠지만 혹여 헌법 개정을 수반하는 권력구조의 개편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닌가 해서 불안한 것이다. 대통령제가 내각제로 바뀔까 봐 전전긍긍하는 것이 아니다. 혹시 들어온 '패'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팔 비틀어서 판을 다시 돌리게 했는데 또 패가 엉망으로 들어오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우리가 다 아는 대로 내각제 아래에서는 여소야대가 있을 수 없다. 의원의 과반을 획득하지 못한 정당은 정부를 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소야대는 없지만 현재 우리의 정국에서 보는 것처럼 다수당이 과반을 차지하지 못했을 때 '정국 불안'이 찾아올 수 있다. 생각해 보라. 한 해가 멀다 하고 정계를 개편하고, 자기들끼리 나눠 먹느라고 민생을 도탄에 빠뜨리는데 견뎌낼 재간이 있겠는가.
이렇게 보면 대통령제에서 여야 간 '교착상태'나 내각제에서의 '정국 불안'은 쌍둥이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서로 바꿔친다고 해도 마찬가지가 된다. 결국 경직된 정국 운영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말하면 '경직'의 반대는 '타협'이다. 현 정부가 경직성을 탈피하지 못하는 원인에 대해 자각하고 이를 완화시켜야만 문제의 핵심에 근접하게 될 것이다. 비전을 보여주고, 다수를 아우르려고 노력해야 한다. 개혁한다고 여야 모두가 법석을 떨어도 국민이 피곤하기만 한 것은 '권력 의지'만 번득일 뿐 무엇을 하겠다는 희망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니 이동시키려 하지 말 일이다.
물론 여소야대는 집권당에 뼈아픈 결과다. 하지만 비정상은 아니다. 오히려 대통령제를 시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1988년부터 여소야대에 시달려 왔다고 하지만 잘 살펴보면 그 속에 빛이 있다. 정통성 없는 독재정권들이 억지로 의석 과반수를 농단하던 암흑시대에 민주화의 물꼬를 낸 때가 바로 그때다. 비로소 시민이 권력을 통제하는 시대에 진입한 것이고, 이 시대에 여소가 됐다면 여대가 되도록 노력해야지 여소야대를 탓할 일은 아니다.
정치사적으로 보아도 대통령제를 키워가야 할 때이지 폐기할 때가 아니다. 50여 년의 현대사를 통해 그나마 키워 온 것이 있다면 대통령제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지금은 개선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대통령제의 꽃은 권력 분립이고, 권력 분립의 핵심은 국회의 독립이다. 국회가 대통령으로부터 독립하려면 국회의원 후보자 공천권을 대통령이 행사하지 않으면 된다. 지금 그렇게 돼 가고 있다. 대통령이 앞장서 실천하고 있는 당정분리 원칙도 같은 맥락에서 국회를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정착되면 이제까지 보아온 대통령 무책임제에서 대통령 책임제로 전환되게 된다. 지금처럼 청와대가 일을 벌이고 당이 뒤치다꺼리하는 일도 없어지게 될 것이다.
차라리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통령의 임기, 부통령제 신설,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의 시기 조절 등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다. 그것도 정치 좀 잘해 놓고 내년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