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논현논단_이호선 칼럼] 노란봉투법, 이미 폭탄은 터지고 있다 / 이호선(법학부) 교수

국민대 법대 학장/前 한국헌법학회 부회장


노조 대응에 경영혁신은 언감생심
시장 불안정에 외국기업 철수說도
산업생태계 붕괴우려 보이지 않나

 

 

이 정부와 여당이 밀어붙인 ‘노란봉투법’이 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 3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그러나 이 법이 한국 경제에 미칠 충격은 법조문이 예정하고 있는 범위를 훨씬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법은 사회가 법을 대하는 습관과 문화 속에서 작동한다.

 

같은 제도라 해도 그 나라의 국민성과 정서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몽테스키외가 ‘법의 정신’에서 강조했듯, 법과 제도는 풍토·역사·민족성과 무관하지 않다.

 

노란봉투법이 산업과 기업 현장에서 파괴력을 갖게 되는 원인은 여러 가지다. 우선 하청업체 노조 간부들이 느끼는 충족감이 모든 교섭 통로를 원청으로 집중시킨다. “완장을 차면 사람이 달라진다”는 말이 있다. 산업현장의 기업 운영과는 비교할 바 아니지만, 대학에서 보직자로서 노조와 교섭하거나 학생대표들과 등록금심의위원회를 경험해 본 바에 의하면 이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교섭 장소에 들어서는 대표자의 체급에 비례해 그 충족감도 커진다. 원청 사업주와 마주 앉는 순간 하청 노조는 강한 효능감을 얻게 된다. 성과와 무관하게 ‘진짜 사장’(?)과 맞붙는 존재감과 짜릿함은 일종의 중독을 만든다.

 

그래서 교섭은 협의가 아니라 자기 확인의 장으로 변질된다. 실제로 노란봉투법의 폭발력은 이미 드러나고 있다. 하도급 노동자들이 원청을 교섭 상대로 삼으며, 교섭에 응하지 않는 것 자체를 부당노동행위라 주장해 고소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교섭의 대상은 무한정 확대되고, 책임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여기에 경영진의 책임 회피와 외부 전문가들의 방어적 조언이 맞물리면 노란봉투법은 필요 이상의 힘을 얻게 된다. 형사처벌 조항이 명시된 노조법을 앞세워 교섭이 밀려들면, 원청 경영진은 어쩔 수 없이 외부 법무법인과 전문가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답변은 대개 가장 보수적이다. 모호한 원칙론에 머무르며 위험을 최소화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원청이 굳이 나설 필요가 없는 경우까지 교섭에 응하는 일이 벌어진다.

 

기업은 본질적으로 불확실한 위험을 감수하고 이윤을 창출한다. 그러나 제도가 만들어낸 확실한 위험을 관리하느라 진을 빼는 상황에서는 창의와 도전을 기대할 수 없다. 수많은 노조의 산발적 공세에 대응하는 것이 경영진의 주된 업무가 되어버린 기업 현장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나 혁신을 모색하기는 어렵다. 노란봉투법이 초래할 재앙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미 시장은 반응하고 있다.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는 노란봉투법으로 인해 기업들이 한국에서 철수할 수 있다는 우려를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실제로 국내 진출 외국 기업의 3분의 1이 철수를 고려 중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나머지 3분의 2가 남아 있다고 해서 안심할 수 있을까? 확실한 것은 새로운 기업이 추가로 들어올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외국 기업들은 투자 전 반드시 실사를 한다. 그중에서도 법률 리스크를 가장 중점적으로 본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어느 로펌이 한국 시장을 “안전하다”는 법률의견을 내겠는가? 언제, 어떤 하청업체가 파업까지 예고하며 “진짜 사장 나오라”고 원청 회사를 점거할지 모르고 교섭 거부가 불법으로 낙인찍히는 환경에서 법적 안정성을 말하기란 불가능하다. 이대로 가면 한국이 ‘투자의 갈라파고스’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현상만 봐도 심각하다. 2024년 기준 우리 기업들의 해외 직접투자 규모는 639억 달러인 반면, 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투자는 345억 달러로 절반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가운데 직접투자 유입 순위는 29위, 하위권이다. 노란봉투법은 이 순위를 더욱 끌어내릴 위험이 크다.

 

노란봉투법은 과연 노동권 보호를 위한 진일보인가, 아니면 산업생태계와 경제를 절단 내고 젊은 세대의 일자리를 앗아가는 폭탄인가. 내년 3월 시행까지 유예기간이 있다고는 하나 이런 식의 눈가리고 아웅 하는 땜질 처방은 근본적 치유가 못된다.

 

폭탄은 이미 현장에서 터지는 중이다. 이 법을 강행한 이들의 자화자찬은 경제 참사라는 재앙의 전주곡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팬덤 정치’와 ‘빨대 정치’로 평생을 살아왔고 앞으로 그렇게 살아갈 이들이 축출당하거나 대오각성이 없는 한 대한민국의 경제도 미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