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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국민대 이종태 교수 가족의 국내 문화유적 답사

  • 작성일 05.07.08
  • 작성자 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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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 국사학과 이종태(45) 교수의 두 딸은 틈만 나면 아버지에게 묻는다.


“우리 가족여행 또 안 가요?”


큰딸 이하영(13·서울 녹천중 1학년)과 둘째 딸 주영(10·서울 녹천초교 4학년) 양에게 가족 여행은 문화 유적 답사와 다름없다. 두 딸은 국내 문화 유적을 또래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 교수의 가족은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이상 미니밴을 타고 전국을 답사한다.


이 교수 가족은 여름방학 때 충남 부여, 전북 변산, 전남 목포를 잇는 코스를 계획하고 있다. 백제 무왕 때 만들어진 부여의 궁남지는 국내 첫 인공 연못으로 부레옥잠, 수련 등 수생식물이 특히 아름답다.


○놀이같은 문화유산 답사


이 교수 가족에게 답사 여행은 가족애를 쌓는 시간이자, 자연스러운 역사공부 시간이다. 가급적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 이 교수 부부는 여행지에서 문화재에 대해 받아 적게 하는 일이 없다. ‘공부’ 대신 보고 체험하고 느끼게 한다.


여행을 떠나기 전 삼국시대, 고려, 조선의 역사를 다룬 만화책을 사 주었더니 아이들은 책에서 본 사실을 여행지에서 기억해냈다.


“야아, 강물 빛이 예쁘다. 이곳이 삼천 궁녀가 몸을 던졌다는 전설이 서린 낙화암이구나.”


지난해 어린이날 무렵 경북 문경새재를 1박2일 여행할 때에는 도자기를 굽는 체험 행사에 참여하도록 했다. 두 딸이 만든 청화백자는 식탁 위의 꽃병으로 활용된다. 식탁 유리 밑에는 가족의 추억이 소중하게 담긴 여행 사진들이 있다.


○아이들은 부모가 아는 것만큼 본다.


“취학 전 아이들에게는 상세한 설명보다 시각 교육에 치중하세요. 죽음에 대한 개념이 없는 어린이들에게 무덤의 구조를 설명하기보다 박물관에서 화려하고 예쁜 금 장신구를 보여주는 것이 훨씬 선명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이 교수는 1997년부터 현대백화점 문화센터에서 8년째 ‘역사문화기행’ 답사 강의를 하고 있다. 그는 “강의 초기에만 해도 ‘관광버스 타고 잘 먹고 놀다 오자’는 이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역사와 문화를 배우려는 자세가 진지하다”며 “여행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부모가 먼저 역사적 지식을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이 교수는 ‘답사여행 길잡이’(돌베개),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웅진닷컴), 역사학자 이이화의 ‘한국역사’ 시리즈(한길사), 아나운서 성세정의 ‘국왕은 커브를 틀지 않는다’(영진닷컴) 등을 추천했다.


“우리 민족은 훌륭한 문화적 재생산 능력을 지녔기에 어느 나라보다 섬세하고 감성적인 문화 유산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이 교수의 두 딸은 이젠 인터넷을 통해 여행할 곳의 정보도 스스로 찾는다. 2월 충남 논산의 딸기밭에서 열린 ‘딸기 따는 체험’도 논산시청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했다. 전남 보성 차밭, 지리산을 여러 차례 여행한 이 교수 가족은 길마다, 골마다 사계절 풍경이 바뀌는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을 잘 안다. 두 딸은 각 고장의 음식 맛에 대해서도 전문가 수준이다.


“여행에 대한 인식이 ‘어디 가 봤다’는 단계를 벗어난 것 같아요. 같은 장소라도 누구와 함께 언제 여행했느냐에 따라서 감흥이 달라지니까요. 자연과 역사가 주는 기대하지 않은 선물, 그것이 가족 여행의 기쁨입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이종태 교수가 추천하는 문화 답사 여행지 5곳▼


● 충남 부여 정림사터와 궁남지


충남 부여는 개방성과 다양성을 지닌 백제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부소산은 백제시대 왕궁을 방어하는 최후의 성곽이었다. 부여는 계획도시로 대부분의 거리가 직선으로 반듯하게 나 있다.


부소산에서 남쪽으로 직선 도로를 따라 내려오면 사적 제301호로 지정된 정림사터가 나온다.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1층부터 4층까지는 일정 비율로 축소돼 균형을 이루지만 5층은 약간 크게 만들어져 있다. 밑에서 올려다볼 때 5층이 보이지 않는 현상을 피하기 위해 체감률을 파괴한 것이다. 정림사터에서 정남쪽에 있는 ‘궁남지’는 백제 시대의 풍요를 보여준다.


● 전남 담양 소쇄원과 식영정


소쇄원은 조선 중종 때 학자인 소쇄 양산보가 기묘사화로 관직에서 물러나 은둔한 곳이다. 조선 중엽 정원의 모습이 남아 있는 소쇄원은 전남 완도 보길도의 부용동원림과 더불어 조선시대 정원의 진수를 엿볼수 있는 곳이다.


소쇄원에서는 우렁찬 계곡 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 계곡 비탈에 세워진 광풍각에 앉으면 자연과 함께 풍류를 즐기던 선비가 된 듯하다. 인근 식영정은 ‘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란 뜻으로 송강 정철의 성산별곡으로 유명한 곳. 조선 명종 때 석천 임억령이 세운 정자다. 식영정 아래 가사문학관에 들르면 송순 면앙집 등 가사문학의 유산을 음미할 수 있다.


● 경북 안동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안동 하회마을은 마을을 둘러싼 꽃산, 울창한 만송정, 아름다운 절벽 부용대 등 여러 절경이 어우러진 곳이다.


고려 말 풍산 유씨가 터를 잡고 대대로 살아온 동족 마을. 양반층의 웅장한 기와집과 서민들의 초가 토담집이 옛 모습대로 보존돼 있다. 마을 한가운데 공터에는 수령 600년이 넘은 고목이 있는데, 이 공터는 삼신당이라 불린다. 이곳에서 하회별신굿 탈놀이도 열린다. 탈놀이는 대개 양반을 벌주거나 귀신이 양반을 잡아먹는 내용인데 하회마을의 탈놀이는 양반과 농민이 화해하는 것으로 끝난다. 서애 유성룡과 아들의 신주를 모신 병산서원은 전망이 좋다.


● 강원 강릉 명주군왕릉과 오죽헌


강릉은 대관령을 거쳐 간다. 대관령은 고개가 험해 오르내릴 때 ‘대굴대굴 구르는 고개’란 뜻에서 ‘대굴령’이 음차돼 지금의 이름으로 불린다. 영서에서 영동지방으로 오는 큰 관문이란 뜻도 지닌다. 대관령을 넘어 동쪽으로 내려가면 강원도 기념물 제12호로 지정된 강릉 명주군왕릉을 만나게 된다. 신라 태종무열왕의 자손인 김주원의 묘소로, 강원도 내 유일한 대묘다. 김주원은 강릉 김씨의 대표 인물. 선덕여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려 했으나 실패하고 지금의 강릉인 명주로 몸을 피해 명주군왕의 자리에 올랐다. 오죽헌은 5000원권 지폐 뒷면의 실제 장소여서 아이들이 신기해하는 곳이다. 보물 165호로 조선시대 양반집 별당의 전형적 건축을 볼 수 있다. 율곡 이이가 태어난 곳이다.


● 경북 문경새재


문경새재는 과거 시험 치르는 선비들이 즐겨 넘던 고갯길이다.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처럼 낙방한다고 해서 꺼렸으나 이 새재는 ‘경사스러운 소식이 들려오는 행운의 과거길’이라 해서 마을 이름도 ‘문경(聞慶)’이 됐다. 문경새재는 최적의 트레킹 장소다. 경관이 수려한 데다 10여 km에 이르는 길이 비교적 평탄하다. 새재길은 고운 마사토로 잘 다져져 있어 맨발로 걸으면 발바닥 지압 효과도 있다. 문경새재에는 3개의 관문이 있는데, 제1관문을 거쳐 1.2km 정도 지나면 조령원 터를 만난다. ‘원’은 역과 역 사이 인가가 드문 곳에 설치한 고려 조선 시대의 국영 여관. 1977년 발굴 조사 때 고려시대 유물이 나와 관심을 끌었다. 문경새재 입구의 드라마 ‘태조 왕건’ 촬영장은 2만여 평 규모로 고려와 백제 거리가 재현돼 아이들이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