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총장으로 행정을 하다 보면 '선택의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자주 있다. 대개의 일에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함께 있어,항상 긍정적 효과가 큰 쪽으로만 선택을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이란 좌우간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선택의 문제는 행정책임자가 일상적으로 겪는 일종의 딜레마라고 할 수가 있다.
가장 자주 선택을 강요당하는 어려움은 '민주와 효율의 딜레마'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민주적인 것이 언제나 비효율적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교수와 직원,학생 등 구성원의 의사를 일일이 따르자면 효율성이 저해되고,효율 위주로 행정을 하자면 불가피하게 비민주적이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게 된다. 면담이나 회의 또는 간담회 등을 통하여 학내의 의견을 되도록이면 민주적으로 수렴하고자 노력하는 편이지만,그것만으로 행정의 생산성이 언제나 담보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동안의 경험에서 나름대로 터득한 지혜는,어떻든 많은 의견을 듣되 종국적인 결정은 스스로의 책임 하에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회의체에만 미루는 것은 우유부단에 다름 아니고,단독의 성급한 판단은 독선으로 떨어질 위험이 있다. 결정에 이르기까지 경청하고,결정을 위한 결심이 서면 당사자의 설득에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됨은 물론이다.
'균형과 집중의 딜레마'는 또 다른 선택의 어려움 중 하나이다. 한정된 자원으로 모든 분야를 골고루 지원할 수도 없거니와 그래서는 대학 자체의 경쟁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은 특성화되고 경쟁력이 강한 몇몇 학부,학과를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다른 분야는 일종의 동반효과를 기대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되지만 이는 다른 학부,학과의 상대적 박탈감을 자아낸다는 문제점이 따른다.
오늘의 대학은 근본적으로 교육중심이냐 연구중심이냐,학술지향이냐 실용지향이냐,균형발전이냐 특화발전이냐의 사이에서 고민을 할 수밖에 없고,집중을 통한 특성화를 한다고 하더라도 대학으로 존속하는 이상 학문 각 분야에 대한 교육과 연구를 위한 기본적인 지원은 당연하고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결국은 어느 정도로 균형 있게 배려하고 어느 만큼 집중된 선택을 하느냐가 그 학교의 발전전략으로 귀착되는 셈이며,그 전략에 대한 공감도가 바로 총장의 리더십과 신뢰감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균형'은 원만하나 발전이 없고,'집중'은 전략상 불가피하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판단이 전제된다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공과 사의 딜레마',또는 '공식적(formal) 요인과 비공식적(informal) 요인 사이의 딜레마'도 결코 쉽지 않은 문제이다. 행정에 있어서 공익보다 사익을 우선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지만,인사를 비롯한 각종 업무수행과정에서 이론과 형식을 앞세운 공식적 접근보다는 감성과 인간관계 등 비공식적 요인에 호소하여 행정목적을 달성하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본다. 가령 특정 보직자를 인선함에 있어,자격은 갖추었으나 잘 알지 못하는 사람보다 능력은 약간 떨어져도 총장과 인간관계가 돈독하여 더 열심히 일해 줄 사람이 훨씬 유용하다는 판단도 일단은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한번 비공식적 요소에 의존하게 되면 종내에는 대다수 구성원들로부터 도덕적 승복을 얻어내기가 어렵게 되고 만다. 결국은 엄정한 공식적 요인을 고려하여 인선을 하되,인선된 사람들을 대학을 위해 진심으로 헌신하는 인재로 변화시켜 몸과 마음을 불태우게 하는 것이 바로 경영의 요체인 것이다.
복잡다양하고 이해집단도 훨씬 많은 국가행정을 대학행정과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와 효율,균형과 집중,공식적 요인과 비공식적 요인 사이에서 겪는 딜레마는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믿는다.
대화와 타협이란 명분 때문에 행정의 효율과 생산성이 눈에 띄게 떨어지고,균형발전의 이름 아래 전략적 집중의 기회를 놓치며,비공식적 고려요인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국가행정의 전문성과 엄정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결국 대다수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음을 모든 행정책임자들은 반드시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