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힘찬 호흡
엑스트라
― 만적의 난
이하
나무깽이와 죽창을 틀어쥔 채
흡반 같은 카메라 앞에서
만적의 난을 재현하는 새벽
자정부터 비는 추적추적 내리는데
태풍에 밭뙈기를 잃은 만적
불황에 일자리를 잃은 만적
경마에 처자식을 잃은 만적이가
씨벌헐 씨벌헐 무릎을 찧어가며
31시간 혁명을 일삼는 중이다.
왜 없는 놈들은 역사를 통틀어
엑스트라인가.
쉴 새 없이 죽창을 휘두르며 나는
노비 혁명을 주도한 만적이가
최충헌의 家奴였다는 사실을 곱씹는다.
차별이 차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혁명이 혁명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서 오지만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해야 한다.
봉수대처럼 집채는 불타오르고
보조 출연자들은 똥돼지처럼 소리치는
반장의 악바리에 똥줄기가 빠지는데
그래도 살아야겠다고 우리들 만적들은
서로의 상처를 어깨동무로 싸맨 채
봉기의 창끝으로 冬天을 가른다.
(발표지 : 『실천문학』 2005년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