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우리] 중·러 밀착과 지정학적 도전 / 장덕준(유라시아학과) 교수
美 맞서 중·러 “무한한 협력” 다짐
지정학적 대립시대 ‘실용외교’ 필요
신냉전 국제관계에서 영원한 것은
‘친구도 적도 아닌 이익’ 되새겨야
중국과 러시아(소련) 관계사는 대단히 역동적이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출범과 더불어 중·소 양국은 서로를 사회주의 형제국이라고 부르며 굳건한 동맹을 자랑했다. 그러나 ‘형제애’는 오래가지 못했다. 1950년대 후반부터 양국 관계는 급랭한 끝에 1969년 3월 우수리강 국경지대에서 일어난 충돌로 인해 전쟁까지 갈 뻔했다. 냉전 종식 이후 급속도로 가까워진 양국은 1996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발전했다. 수교 70주년을 맞은 2019년 두 나라는 ‘신시대 전면적 전략 협력 동반자 관계’를 선언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이렇듯 빠르게 밀착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주지하다시피 소련 붕괴 이후 미국은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국제정치 무대를 지배했다. 강대국 재건을 갈구하는 러시아와 중화질서의 부활을 꿈꾸는 중국은 미국의 단독 질주를 반대했다. 그리하여 양국은 미국 중심의 국제체제를 다극체제로 재편해야 한다는 데 의기투합한 것이다.
장덕준 국민대 교수·유라시아학
국제정치적 배경에 더해 호혜적인 협력 필요성이 양국 간 유대를 더욱 강화시켰다. 지난 수십년간 중·러 양국은 교역, 투자, 에너지, 인적교류 등 다방면에서 협력의 폭과 깊이를 더해왔다. 그뿐만 아니라 군사협력 부문에서의 협력도 눈에 띈다. 최근 러시아는 Su-35 전투기, S-400 방공시스템 등 자국산 최첨단 무기까지 중국에 제공했다. 더 나아가 양국은 ‘보스토크(동방)-2022’를 비롯해 여러 차례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정상외교도 큰 몫을 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10년간 40차례 넘게 만났다. 지난달 21일 모스크바 정상회담 직후 발표된 공동성명은 “중·러 관계가 역사상 최고 수준에 도달했으며 앞으로 계속 발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양국 정상은 지난해 2월4일 베이징에서 ‘한계 없는 협력’ 관계를 다짐한 바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중·러 관계는 시험대에 올랐다. 일단 중국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확대 강행이 안보에 위협을 가했다는 러시아 주장에 동조했다. 그렇지만 영토주권의 보전, 분리주의 반대, 유엔헌장의 준수 등을 강조해온 중국으로서는 러시아의 ‘침공’을 명시적으로 지지하지 않았다. 특히 서방의 고강도 대러 제재하에서 베이징의 모스크바 지원에는 한계가 있다. 미국, 유럽 및 우크라이나와 교역, 투자, 또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그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중국은 대러 군사지원에 대해서는 더욱 신중한 입장이다.
핵무기 문제에서도 베이징과 모스크바는 엇박자를 냈다. 양국은 지난달 모스크바 공동성명에서 핵무기의 불사용 및 해외 배치 반대 입장을 천명했다. 그러나 푸틴의 러시아는 공동성명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벨라루스에 전술핵을 배치하겠다고 발표해버렸다.
그럼에도 치열한 미·중 경쟁 와중에 일어난 우크라이나 전쟁은 중·러 전략적 연대의 기본틀을 흔들지는 못했다. 도리어 미국과 서방의 민주주의 동맹과 러시아와 중국, 북한의 권위주의 연대 사이에 이견과 갈등이 더 심화되었다. 모스크바 방문 시 시진핑은 “우리(중·러)가 함께 거대한 변화를 만들고 있다”고 언급했다. 지정학적 대립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선포하는 말로 들린다.
이러한 지정학적 도전을 맞아 윤석열정부는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 등을 지향하는 가치외교를 추구한다. 한·미동맹 강화와 한·일관계 개선이 그 핵심이다. 동맹외교와 가치외교는 중요하다. 그럼에도 진영을 갈라 한 곳에 올인하는 것은 하책(下策)이다. 북핵문제 대응, 에너지·식량 안보 제고, 교역·투자 증대, 북극항로를 포함한 물류·수송로 확충 등 다양한 도전과 기회에 대처하려면 유연하고 실용적인 외교가 필요하다. 지정학적 갈등 국면에서도 중국 및 러시아와의 협력 공간을 남겨 두어야 하는 이유이다. 국제관계에서 ‘영원한 것은 친구도 적도 아닌 이익’이라는 파머스턴 경의 충고는 오늘날에도 새겨들어야 할 명언이다.
장덕준 국민대 교수·유라시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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