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완박’ 합헌 결정, 헌재는 왜 있는가 / 이호선(법학부) 교수
이호선 국민대 법대 교수, 변호사
‘2023년 3월 23일’은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의 흑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헌재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률의 입법 절차에서 입법부 구성원의 심의·표결권이 침해됐다고 인정하면서도 국회의장의 법안 가결 선포 행위는 적법해 결국 법률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결정했다. 이번 결정은 법률 전문가 입장에서 보지 않더라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해괴한 결론이다.
국회 법사위를 거쳐 본회의까지 이르는 일련의 순차적 법안 처리 과정에서 선행 하자가 후속 행위의 효력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헌재는 정치적 사안에 대해 사법적 심판을 하는 곳이다. 사법적 심판이 필요한 이유는 입법권에 대한 불신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선출된 권력인 국회는 국민 주권의 표현이다. 하지만 법의 이름을 이용한 다수의 횡포가 한국 정치에서는 너무 자주 발생한다. 이로 인해 국민의 기본권 침해 등이 문제 될 수 있기에 헌법 재판을 통해 견제하고 바로 잡아야 한다.
상식적으로도 납득 힘든 판단
국회 입법 절차 위법은 인정
헌법 수호자 역할 의심스러워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마키아벨리는 일찍이 로마가 망한 이유 중 하나로 입법자들의 책임을 지적했다. 입법자들이 처음에는 민중의 비위를 맞추는 법을 만들어 인기를 끈다. 그 뒤에 자기들의 사익을 위한 법을 쏟아내도 이미 타락하고 힘이 없는 민중은 자기를 파괴하는 법을 막지 못하게 된다고 갈파했다.
국회의 입법 재량을 광범하게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입법 절차상의 재량을 광범하게 인정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형사 사법의 원리 중 ‘독수독과(毒樹毒果)의 원리’라는 것이 있다. 절차적으로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는 그것이 아무리 실체적 진실 규명에 유용하더라도 증거로 써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대한민국 재판정에서 엄격히 지켜지고 있다.
개별 사건에 있어서 적법 절차 준수가 철저히 요구되는데, 하물며 법률을 만드는 입법 과정 자체가 위법이라면 오죽하겠나. 숲이 통째로 독을 품은 나무로 채워진 것과 같아서 나무를 한 그루씩 들여다볼 필요도 없이 그 숲 자체를 없애야 한다.
그런 까닭에 법률의 내용에 관해 설령 ‘사법 자제’를 하더라도 입법 과정의 적법 절차 준수는 ‘헌법 수호 기관’으로서 헌재가 절대 양보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27개국의 연합체인 유럽연합(EU)은 공동 외교 및 안보정책·공동방위 같은 고도의 정치적 판단과 결단이 필요한 분야에는 사법적 개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어떤 결론에 이르게 된 과정, 즉 절차적 적법성 준수 여부에 관해서는 유럽연합 최고법원이 관할권을 갖도록 명시하고 있다. 사법 심사에서 제외되는 절차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1987년 헌법 개정 논의 초기부터 헌재를 신설하려고 하지는 않았었다. 미국식으로 대법원에 그 기능을 두려 했으나 정치적 논란거리를 꺼렸던 법원의 강력한 반대로 독일식 헌재 도입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황당한 이번 결정을 계기로 헌재가 별도의 사법기관으로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제기된다. 유남석·이석태·김기영·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이 “정치적 헌법기관인 국회가 가지는 자율권과 정치적 형성권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위장 탈당과 쪼개기 국회 의사일정 등 극심한 파행 와중에 만든 검수완박법이라는 독과(毒果)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이는 정치에 대한 사법적 심판 기능을 포기하고 스스로 ‘정치의 추인기관’으로 전락하겠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앞으로 국회에서 무법천지처럼 하자 있는 절차를 거쳐 법을 만들더라도 ‘결론은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리는 헌재라면 세금만 축내는 그런 기관이 굳이 있을 필요가 있을지 국민은 묻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비정치적 영역에서 헌법 체계적 적합성 여부 심사는 대법원이 해도 충분하다. 이번 헌재 결정은 자신들을 헌법재판관으로 추천해준 정당의 이익을 위해 정치적 단일대오를 구축한 결과라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헌법재판관의 독립성·전문성·공공선에 대한 헌신과 상식, 그리고 정의와 헌법의 수호자라는 역할을 의심받게 했다. 헌재의 재앙, 즉 ‘헌재(憲災)’를 계기로 헌재가 존재의 정당성까지 의심받는 상황이 개탄스럽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호선 국민대 법대 교수, 변호사
※ 게재한 콘텐츠(기사)는 언론사에 기고한 개인의 저작물로 국민대학교의 견해가 아님을 안내합니다.
※ 이 기사는 '뉴스콘텐츠 저작권 계약'으로 저작권을 확보하여 게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