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나비부인’ 막바지 연습 한창 / 김향란 (음악학부) 교수
날이 흐렸다. 기온은 높다. 불쾌지수가 높을 수밖에 없다. 땅거미가 스물스물 기어나오자 서울 현대고등학교로 하나, 둘 발걸음이 모여든다. 힘겹게 계단을 올라 6층 끝 체육관에 이른다. “짝짝”, 박수소리가 그들을 맞는다. 연습 시작이다. 후텁지근한 체육관에 아름다운 아리아가 울려 퍼진다.
18일 ‘나비부인’의 연습은 그렇게 시작됐다. 소품도 의상도 완비되지 않고, 반주는 피아노가 전부다. 그런데도 주역들은 금세 극에 몰입한다. 합창단에게선 긴장감이 느껴진다. 연출가 유희문의 손이 현란하게 움직인다. 합창단 시선 처리까지 챙긴다. 합창단이 한지 우산을 들고 줄줄이 등장할 때는 “쫑쫑”이란 말로 종종 거리는 발걸음을 강조하고, 분위기가 고조됐을 때는 오페라에 어울리지 않을 듯한 “아싸” 하고 추임새를 넣어 흥을 돋운다.
‘나비부인’은 일본 게이샤 초초상과 미군 핑커톤의 화려하면서도 비극적인 사랑이 다뤘다. 이날 연습에 나온 나비부인은 소프라노 김향란. 그의 파트너는 테너 존 벨레머다. 또다른 커플 이수경-강무림과 달리 핑커톤을 보다 실감나게 담아내려고 일부러 존 벨레머를 영입했다.
바르셀로나 리세우 극장 부지휘자를 지낸 지휘자 마크 깁슨(신시내티 음대 교수)과 함께 17일 내한한 존 벨레머는 이날 처음 김향란과 호흡을 맞췄다. 무대 위 동선이나 상황에 맞는 동작이 나오지 경우도 있다. 그럴수록 몸에 익히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그의 목소리엔 무게감보다 섬세한 감정이 담겼다. 서정시를 떠올린다.
초초상 역의 소프라노 김향란(국민대 교수)은 1987년 이탈리아 베로나 오페라에서 처음 ‘나비부인’ 주역을 맡았다. 국내에서만 99년, 2004년에 이어 세 번째다. 그에게 ‘나비부인’은 익숙하면서도 여전히 까다롭다. “어려운 오페라에요. 박자 맞추기도 쉽지 않아요. 소리 자체는 굉장히 서정적인데, 그 속에 드라마틱한 요소가 많아 표현이 까다롭죠.” 초초상은 핑커톤에 맞춰 개종을 결심한다. 삼촌 본조는 불같이 화를 낸다. 해학과 부드러움으로 이어지던 극에 긴장감이 고조된다. 초초상은 비통한 울음을 터뜨리고, 연회 참석자들이 빠져나가며 “오! 초초상”이라 입을 모으는 장면에선 넓은 체육관 전체가 불길한 기운에 찌릿찌릿 울린다.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는 두 연인의 이중창으로 1막이 끝난다.
휴식시간은 단 5분. 잠깐 목을 축이고 연습은 재개된다. 3년간 오직 항구만 바라보며 살아온 초초상의 모습으로 2막이 오른다. 하녀 스즈키는 그의 기다림을 말려보지만 꾸중만 듣는다. 스즈키 역의 메조소프라노 이아경는 낮에 대구 계명대에서 강의를 하고 이날 저녁 연습에 참여했다.
스즈키만 3번이나 소화한 그는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지만 오페라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어서 따라가다 보면 힘이 절로 나죠”라고 씩씩하게 말한다. 초초상이 핑커톤을 그리워 하며 부르는 아리아 ‘어느 개인 날’의 애절한 선율이 끝나자 숨죽이고 있던 합창단에서 박수가 터져나온다.
그러나 막스 깁슨은 성이 안차는지 “No”라 말한다. “One more time(한번 더)”가 뒤따른다. 연습 대목마다 그는 마음에 안 들면 가차없이 “No”를 외친다. 그는 주역들과 작품을 해석하고 의논하면서 역량에 맞춰주는 편이지만 대충 넘어가는 경우가 없다. 작품의 향기가 깊어질 수밖에 없다.
2막에서는 극이 절정을 향해 치다기에 감성적인 부분이 많다. 음악도 좀 가벼운 1막과 달리 풍성하고 짙다. 특히 나비부인의 슬픈 운명을 담아낸 아리아들은 머리 끝까지 저리게 한다. 나비부인은 결국 아들을 남기고 자진한다. 이 대목에서는 나비떼가 날아오르는 장관이 연출된다. 유희문 연출은 “나비부인의 자결을 막 안쪽에서 보여주면서 동영상으로 처음엔 한, 두마리로 시작해 수만 마리의 나비를 한꺼번에 날릴 것”이라고 귀띔한다. 연습장에서는 볼 수 없어 아쉬움이 컸다.
‘라보엠’ ‘토스카’와 더불어 푸치니의 3대 명작인 ‘나비부인’(제작 글로리아 오페라단) 24일부터 나흘 동안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오른다.
윤정현 기자(hit@heraldm.com) 사진=배선지 기자(sunji@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