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걸 칼럼] 분열 부추기는 광복회장의 `충격적` 기념사 / 홍성걸(행정학과) 교수
기상관측 이래 최장기간 계속된 장마의 끝자락에 맞이한 75주년 광복절, 나라를 되찾은 그 날의 기쁨과 함께 순국선열의 희생을 되새겨 감사한 마음으로 맞이해야 마땅한 그 날, 필자는 무거운 쇠망치에 머리를 맞은 것 같은 충격에 빠졌다.
코로나19의 창궐 속에 장맛비가 퍼붓는 광화문 광장에 모인 수많은 반문 시위대 때문이 아니다. 정치적 견해와 입장은 서로 다를 수 있으니 시위는 민주주의 사회의 일상 중 하나일 뿐이다. 필자를 충격에 빠뜨린 것은 대통령과 3부 요인이 참석한 광복절 기념식에서 김원웅 광복회장이 한 기념사 때문이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기념사 자체보다는 이를 듣고도 그대로 앉아 박수를 치고 묵시적 동의를 표시한 대통령과 집권세력의 몰지각한 역사관과 가치관 때문이었다. 그것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을 김원웅에게 대신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우리 국민이 수많은 고난과 시련을 뚫고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고 하면서 제주 4.3사건을 비롯해 오직 민주화와 관련된 것만 사례로 들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에 참전국 지위를 확보하지 못한 우리의 건국은 태생부터 쉽지 않았다는 것,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대한민국의 건국은 국제정세를 정확히 판단한 이승만 대통령의 과감한 결단과 김구 등 애국지사들의 헌신적 노력의 결과였다는 것, 그리고 건국 2년 만에 무력 남침을 자행한 공산주의자들로부터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호국장병들은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굶기를 밥 먹듯 하면서도 오직 후세에 가난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신념 하나로 산업화를 위해 매진한 산업화 세대의 희생은 독재로 폄하하고, 오로지 민주화 세력만이 대한민국을 만든 것처럼 주장했다.
그들은 또 이승만 대통령과 안익태 선생을 친일파라고 비난했다.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었고, 평생 독립운동에 헌신했으며, 건국 직후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으로서 한미동맹을 이끌어내 나라의 안전을 지켜낸 분을 반민특위의 활동을 방해했다는 이유만으로 친일파라고 비난했다.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은 베를린에서 만주국 건국 10주년 음악회에서 지휘를 했다는 것을 이유로 친일파로 단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행위가 칭찬받을 일은 아니라 해도 세계적 음악가이며 70년 이상 불러온 애국가 작곡자를 친일파로 단죄해야 할 이유가 될까.
그러기로 말하면 민정당에 부역하고 보수정당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까지 지낸 김원웅은 단연 독재자의 후예로 단죄되어야 할 것이다. 그밖에도 김일성의 남침으로부터 이 나라를 지켜낸 수많은 호국영웅들을 국립묘지에서 파묘해야 한다고 아우성쳤다. 그들 중 일부는 친일행적이 입증되기도 했지만, 이후 그들은 목숨을 걸고 대한민국을 지켜낸 공이 있다. 공과가 함께 존재하는 사람들을 과오만을 강조해 파묘해야 한다면, 후일 민주화 운동가 중 과거 독재에 부역했던 사람들을 가려내 모두 부관참시해야 할 것이다.
집권세력의 친일프레임 덮어씌우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전국 학교의 교가 중 소위 친일파 음악가들이 작곡한 것을 모조리 바꾸어야 하고, 친일행적이 의심되는 인사가 심은 나무는 모두 뽑아버려야 한다고도 한다. 작곡된 교가에도 친일, 반일이 있는가. 심겨진 나무는 또 무슨 죄인가.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는 백범이 직접 쓴 것이 아니라 그의 메모와 구술을 받아 자타가 공인하는 친일파 작가 춘원 이광수가 대필한 것이다. 그러면 <백범일지>도 버려야 하는가.
75년 전 광복의 그 날, 우리 민족은 너나없이 나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광복절 하루만이라도 그날의 감격을 오롯이 되새길 수는 없는가. 친일행위는 그것이 명백히 이 나라의 정기를 훼손하고 민족에 해를 끼친 경우에만 단죄되어야 한다. 언제까지 이 나라를, 이 국민을 갈기갈기 찢어 알량한 정치적 이익을 취할 생각인가.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후세의 판단이 두렵지 않은가.
원문보기: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20081802102269002001&ref=naver
※ 게재한 콘텐츠(기사)는 언론사에 기고한 개인의 저작물로 국민대학교의 견해가 아님을 안내합니다.
※ 이 기사는 '뉴스콘텐츠 저작권 계약'으로 저작권을 확보하여 게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