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저출산 대책 ‘희망 펀드’ 만들자 / 이호선 (법학)교수

  • 작성일 06.05.16
  • 작성자 박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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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52만명의 노동력 부족에 잠재성장률 2.91%.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 1.08명의 기록이 가져올 14년 뒤 2020년의 모습이다. 저출산 재앙의 심각성을 놓고 정부는 앞으로 5년 동안 19조3천억원을 출산장려 정책에 쏟아 붓겠다고 한다. 과연 출산율을 끌어올릴 만한 근본적인 유인동기를 제공하는 실효성 있는 정책인지 걱정과 기대가 교차한다.

저출산을 가져오는 사회·경제적 환경의 뿌리에는 심리적 요인이 자리잡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생태계의 먹이사슬에 불안요인이 생기면 저절로 개체수를 조절한다고 한다. 종족 보존의 인간 본능을 거스르면서까지 경이적인 출산회피 성향을 보이는 원인을 단지 여성들의 직장생활과 출산·육아 부담, 개인주의 성향의 만연으로만 돌리는 것은 지나친 단견이다.

직업과 경제적 발판을 잃은 사람들이 극단적으로 선택하는 일가족 자살의 비극 속에서 저출산의 원인을 봐야 한다. 생태계에 대한 불확실함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자기보존의 욕구조차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출산과 육아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낳은 아이가 사회에 나갔을 때 생존이 불안하다면 본능적으로 출산을 꺼릴 것은 자명한 일이다. 따라서 출산장려를 위해 쓰이는 돈의 상당 부분은 여기에 집중되어야 한다.

금융자본의 힘이 모든 산업을 지배하는 ‘머니 게임의 시대’에 최소한의 발판이 마련된다는 것은 자식을 낳고 키울 사람들 처지에서는 큰 위안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한 해에 태어나는 아이들에게 일인당 일정금액을 투자 종자돈으로 할당한 뒤 이들을 수익자로 하여 국가가 일종의 펀드를 만들어 그들이 성년에 이르기까지, 또는 필요하면 그 이상 운용하여 최종적으로 수익자에게 분배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금융자산에 대한 접근기회의 보장은 형평성이라는 정의와 부모로부터 물려받을지도 모르는 적자 인생의 순환고리를 끊어주는 구실을 할 수 있다. 미래세대를 위한 ‘희망펀드’이다.

정부가 투입하겠다고 하는 한 해 평균 약 4조원 중 1조원만 여기에 배정한다고 하면 지난해 신생아 43만8천명을 기준으로 할 때 1인당 200만원이 약간 넘는 종자돈을 받게 되는 것이다. 신생아들을 수익자로 하여 매년 만들어지는 이런 펀드는 금융산업 육성과 국내외 금융시장에서 경쟁력 제고라는 측면에서도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이다.

올해 정부 예산이 약 202조원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이 정도의 부담은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경우 다른 나라들과 달리 주민등록번호라는 개인 고유번호 제도가 있어 펀드 구성 및 지급에서 누락이나 중복의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없고 지금은 글로벌 투자가 가능하다는 점도 이 제도의 실효성을 높여준다. 희망펀드는 주는 쪽과 받는 쪽 사이에 세대를 초월한 공동체적 유대관계도 강화시켜 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고령화 사회의 부담을 떠안고 태어날 세대들에 대하여 지금을 사는 우리의 마땅한 의무이기도 하다. 정부의 출산장려 정책이 문민정부 시절 10년간 57조원을 종적 없이 쏟아 부었던 농어촌 구조개선 사업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적어도 투자재원의 일정 부분은 장기적 관점에서 활용되어야 한다.

이호선 /국민대 교수·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