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석 때 언론은 대통령선거 여론조사 결과를 집중 보도했다. 관심은 예비 후보들의 지지율 변화였다. 지상파 방송사는 컴퓨터 그래픽 화면을 통해 여론의 추이를 상세하게 다뤘다.
어떤 방송은 대권주자의 근황을 짚어보는 시리즈를 쏟아냈다. 신문들도 예비 후보들의 지역별 지지도를 분석하고 앞으로 있을지 모를 정계개편 시나리오에 대비시켰다. 가족과 친척이 모인 추석날, 대선 전망은 주요 화두였다.
대선 보도는 언론사 입장에서는 남는 장사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주제다. 대권 보도는 선거가 치러지는 내년 말까지 써먹을 수 있는 좋은 뉴스거리다. 시청률과 열독률을 높일 수 있다. 문제는 결과가 1년 2개월 뒤에나 밝혀진다는 점이다. 그 기간은 숱한 정치바람이 몰아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차기 대선은 본선은커녕, 예선전도 시작하지 않았다. 내년 대선에 참여할 선수는 물론이고, 게임의 룰도 정해지지 않았다. 지금의 대권 보도는 철저하게 후보 위주다.
그러나 우리의 대선이 언제 후보만으로 결정된 적이 있던가. 박찬종, 이인제, 정몽준 세 사람은 과거 대선에서 선거를 1년 여 앞두고 여론조사에서 1, 2위를 다퉜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금의 후보 중심의 보도는 '아니면 말고' 식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어쨌든 대권 레이스는 시작됐다. 돌아갈 수 없는 길이다. 가야만 하는 길이라면 제대로 가자. 대선 보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필자는 다음의 몇 가지를 주문하고 싶다.
첫째, 우리 사회가 당면한 의제에 관심을 쏟자. 후보나 정당이 선거전략 차원에서 만들어내는 이벤트에는 가급적 눈을 떼자. 유권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문(自問)해 보자.
그 결과를 선거보도 의제로 삼자. 중요도가 높은 사회 이슈들은 선거기간 내내 반복적으로 문제 제기하자. 그것에 대한 후보의 입장과 정책 대안은 유권자의 이름으로 요구하자.
사회 현안을 파악하기 위해 이슈 여론조사와 전문가 패널조사를 활용하자. 정책 중심의 보도가 그간 선거 결과에 생각보다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던 것은 정책 선거가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보다는 그것이 피상적이어서 유권자에게 별 감흥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둘째, 후보의 자질에 주목하자. 경마식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후보의 대중적 인기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자. 후보가 어떤 사회적 세력을 대표하는지, 어떤 철학과 가치를 지향하는지 면밀히 파악하자.
과거 경력을 통해 후보가 어떤 중요한 결정을 내렸는지, 그리고 그것의 결과는 어떠했는지 조목조목 따져보자. 후보의 과거사와 관련해 잘 알려지지 않은 것들은 주변 인물들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듣자.
셋째, 진실 보도팀을 구성하자. 선거전이 본격화 하면 인신공격이나 비방전이 기승을 부릴 것이다. 근거 없는 네거티브 캠페인은 더 이상 '땅 짚고 헤엄치기'가 아니라 되치기 당할 것이라는 점을 선언하자.
대변인의 논평 보도는 최소화하자. 진실 보도팀을 가동해 사안의 진위를 밝혀내자. 진실 보도팀이 밝혀내는 검증 가능한 정보는 선거전 내내 약방의 감초가 될 것이다.
넷째, 시민단체처럼 겉으로는 중립성을 표방하는 비정치적 조직의 선거 참여에 주목하자. 시민단체가 내세우는 대의명분 못지않게, 그들이 실제 어떤 후보나 정당을 지지하는지 밝혀내자.
그들 조직의 운영자금은 누가 대고 있는지, 주도적 인물의 면면은 어떤지 보도하자. 그리고 무엇 때문에 선거에 참여하는지를 포장된 명분과 실제 작동 원리로 구분하고, 실제에 주목하자.
다섯째, 대선보도는 언론사의 사운과 신뢰도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시험무대라는 점을 명심하자. 정파적 의견에 매몰되지 말고 독립적 자세를 견지하자. 언론사가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면 사설을 통해 당당히 밝히자.
그리고 뉴스는 언론사의 정치적 입장과도 독립적임을 선언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강인한 마음으로 무장하자. 정치권력은 유한하겠지만, 우리 사회와 언론은 무한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자.
열린우리당은 오픈 프라이머리를 통해 차기 대선 후보를 뽑기로 결정했다. 한나라당도 이를 검토중이다. 오픈 프라이머리 제도에서는 유권자들이 본선뿐 아니라 예선에서도 결정적 파워를 발휘한다. 따라서 다음 대선에서는 유권자들의 합리적 선택을 위해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는 언론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