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선 칼럼] 민주시민교육법안들이 폐기되어야 하는 이유 / 이호선(법학부) 교수
‘못된 일 꾸미는 국회’ 작심한 민주당
소위 민주시민교육과 관련한 법안 쏟아내
시민교육 빙자한, 정권 옹위대 양성 목적
시민 위에 군림하고 더 많이 안다는 발상
민주당의 시민교육 = 일제의 신민교육
180석에 육박하는 의석수를 믿고 밀어 붙이는 민주당의 폭주가 예사롭지 않다. 일찍이 예상못한 바는 아니었으나, 최근에 나오는 입법안들을 보면 민주당은 ‘일하는 국회’를 내걸고, ‘못된 일 꾸미는 국회’로 나가기로 작심한 듯하다. 그 대표적인 사례 중의 하나가 소위 민주시민교육과 관련한 법안 쏟아내기다. 첫 번째 법안은 2020.6.1. 자로 남인순 의원 등 18인이 제출한 <민주시민교육지원법안>이고, 뒤이어 이달 16. 박찬대 의원 등 12인이 <학교민주시민교육법안>을 제출했다.
법안이 제출된다고 모두 입법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것이 일반적이나, 지금의 여당 의석수와 이들이 보이고 있는 막가파식 행태, 이념에 편향된 기층 저변세력을 만들고 먹이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집요함, 잘 짜여진 역할 분담을 보는 듯한 두 법안의 내용과 체계를 보면, 이 두 법안은 그냥 한번 제안했다가 아니면 말고 식으로 순순히 포기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건강한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하여 시민 교육은 필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일찍이 건강한 국가 공동체를 위하여는 시민 교육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하였고, 토크빌은 <아메리카의 민주주의>에서 식민지를 개척한 미국인들의 특징으로 유럽인들보다 높은 수준의 식견, 그리고 잘못을 스스로 시정할 수 있는 역량을 높이 샀다. 마키아벨리는 부패한 민중들, 즉 사람들을 좋은 시민들로 만들기 위한 도덕과 덕성이 없는 상태에 처한 사람들 속에서 자유를 세우거나 회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다고 보았다. 이런 점에서 시민교육의 핵심은 건전한 민주공화정의 정체성이 변질되지 않도록 그 토양이 되는 시민들의 공공선에 대한 바른 이해와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어야 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있어서 시민 자격의 배후적 정서를 차지하는 두 가지 결정 요인이 있었다. 하나는 폴리스의 복리(well-being)에 대한 헌신으로서, 공적인 사안에 참여하려는 자발성과 욕구를 말하는데 여기에는 소극적 요소와 적극적 요소가 있었다. 이 중에서 소극적 요소는 법을 무시하는 독재에 대한 거부였다. “전제정치는 그리스의 영혼을 해 친다”라는 말은 전제정에 대하여 시민이라면 누구나 깨어서 저항하여야 할 의무가 있음을, 그걸 자각하고 행할 때라야만 시민으로서의 자격이 있다는 원칙이었고, 시민적 가치는 여기에 녹아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시민이라는 프리즘으로 남인순 의원과 박찬대 의원이 각각 발의한 법안을 볼 때, 이것이 시민 자격을 북돋우는 것인지, 아니면 반대로 시민교육을 빙자한, 독재의 강화와 정권의 옹위대를 양성하는 시민 죽이기로 이어질 것인지 냉정하게 판단해 봐야 한다.
시민교육이 필요하더라도 그 주체는 국가, 정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민주 국가에서도 유권자들의 표로 집권이 좌우되고 정권 유지가 담보되는 현실에서 정파의 대표성을 갖고 있는 정부가 시민교육에 개입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자파시민교육 내지 준(準) 당원교육화 시키려는 유혹에 빠질 수 밖에 없다. 권력이 시민 사회를 교화하고, 강제하며, 내 편을 만들어 동원세력으로 만들겠다는 유혹은 매우 강력하다.
제대로 작동하는 민주공화정에서조차 마이클 샌델은 그러한 점을 지적한다.
“자유주의자들의 우려는 무시해서는 안 될 통찰을 담고 있다. 즉, 공화주의 정치는 위험스러운 정치, 보증되지 않은 정치이다. 공화주의 정치가 내포하고 있는 위험들은 덕성의 형성적 기회에 내재되어 있다. 정치공동체가 시민의 성품 형성에 관여토록 하는 것은 나쁜 공동체가 나쁜 성품을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인하는 것이다. 권력이 분산되고 공민 형성의 장소가 다양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이 위험을 줄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이것이 바로 공화주의 정치에 대한 자유주의적 불평의 진리이다.”
하물며 지금과 같이 헌법적 가치가 집권 세력에 의하여 여지없이 짓밟히고, 맹목적 진영논리가 정치의 모든 합리적 논의를 덮어버리는 우리 현실에서 국가가 나서서 시민교육을 하겠다는 것은 교육이 아니라 ‘교화’를 하겠다는 것이고, 그 교화를 통해 내편과 네편을 확실히 갈라놓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실제로 남인순의 법안에는 민주교육원이라는 것을 만들어 민주시민교육 종합정보시스템을 구축·운영하도록 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지역 단위로 그대로 이어져 지역민주시민교육센터에서도 각각 민주시민교육 종합정보시스템을 구축·운영하게끔 하고 있다. 이는 시민교육 대상자들을 정부가 관리하겠다는 것으로, 시민 개인의 정치적 성향을 파악하고, 자기 세력을 양성하며, 피아(彼我)를 구분하는 정보를 갖고 있겠다는 의도 외에 달리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법안들은 법의 기본적 속성인 정의와 공정의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 모든 법률은 모든 시민을 차별 없이 다루며 고르게 적용될 것을 전제로 한다. 칸트 식으로 표현하자면 누가 입법을 하더라도 그와 같은 정도의 법안을 만들 때, 그 법률은 법으로서의 존재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남인순, 박찬대 의원 식의 법안은 곳곳에 ‘민주’라는 사실상 다의적이고 애매모호하며 자의적인 용어를 통해 주변 기층을 민주시민교육 인력 양성이라는 명목으로 끌어 모아 국가의 돈으로 자기 사람들의 먹거리와 활동반경을 마련해 주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사실 시민교육을 정부가 시키겠다고 나서는 것만큼 국민에 대한 무례와 모욕은 없다. 그것은 내가 시민 위에 군림하며, 더 많이 알고, 더 멀리 본다는 오만한 발상이 아니면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지금 국민의 눈에 정치인들이나 관료들은 시민보다 더 똑똑하지도 않고, 도덕성이나 정의관념은 보통 사람 이하로 평가받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루소는 <에밀>에서 “모든 것은 창조자의 수중에서 나올 때는 선한데 인간의 수중에서 모두 타락한다.” 하였다. 이미 더러워진 손으로 시민 교육을 입법화하겠다고 나선 그 오만함과 뻔뻔함이 한국의 시민성을 추락시키고, 사회적 자본을 급속히 소진시키고 있는 것이다. 남인순, 박찬대 의원 등이 해야 할 가장 좋은 시민교육은 조국, 윤미향, 박원순 등으로 이어지는 위선과 거짓에 대한 진솔한 사과와 책임지는 모습이다. 공화정의 미덕을 해치는 모든 저열한 행태는 시민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이 법안들을 발의한 의원들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에서 나왔다. 도둑이 도덕을 가르치겠다는 뻔뻔함이다. 훔치다 훔치다 도덕까지 훔치겠다는 것인가.
우리는 일제의 교육을 시민교육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것은 후쿠자와의 말에 따르면 동류로서 조금도 나을 것이 없는 한 인간의 신민(臣民)이 되는 교육이었다. 그 나무를 보면, 그 열매가 어떤지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지금 발의되어 있는 남인순, 박찬대 등의 법안은 시민사회의 목적인 포용(inclusion)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배제(exclusion)에 기울어질 것이다.
남인순 의원과 박찬대 의원이 각각 대표자로 발의한 법안들이 법률로 탄생하면 시민교육이라는 명목 하에 대한민국 ‘시민사회(Civil Society)’가 ‘악한 사회(Evil Society)’로 변모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이 두 악법(惡法)안은 즉시 폐기되어야만 한다.
이호선 객원 칼럼니스트(국민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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