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영의 IT로 보는 세상] 실리콘밸리 평생재택근무의 비밀 / 윤종영(소프트웨어학부) 교수
윤종영 님 /캐리커쳐=디미닛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해 실리콘밸리의 많은 회사들이 재택근무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구글과 페이스북은 올해 말까지 재택 근무를 선언했고, 트위터는 아예 지속적으로 재택근무를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1년 내내, 심지어는 평생 회사에 전혀 가지 않고 근무를 한다는게 도대체 어떻게 가능할까?
하지만 실리콘밸리에서는 굳이 놀라운 일이 아니다. 원격근무 혹은 재택근무를 위한 화상회의 시스템 등이 활성화 됐기 때문일까? 물론 그럴수도 있다. 그런데 그보다는 얼굴을 맞대지 않고도 높은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는 업무 문화가 이미 자연스럽게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 관리자의 흔한 하루
수년 전 실리콘밸리의 어느 거대 인터넷 기업에서 운영팀장으로 근무할 당시의 일이다. 이 회사는 '관리자의 지옥'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관리자의 책임과 업무량이 엄청났었다.
실제로 나도 팀원들보다 평균 두배 이상의 업무량과 시간을 감당하면서 일했다. 기술 운영, 프로젝트 관리, 그리고 인사 업무까지 처리하다 보면 하루 12시간 이상 근무하는 게 다반사였다.
더구나 우리 팀은 회사의 웹사이트 운영을 담당했기에 24시간 근무를 해야 했고, 이를 위해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서 업무 시간이 끝나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인도 지사의 팀원들이 그 뒤의 업무를 이어나가는 시스템이었다.
팀장인 나로서는 운영상의 문제가 발생하면 한밤중에 자다가도 일어나서 인도 현지의 팀과 전화와 메신저로 업무를 처리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끝없이 이어지는 회의로 인해, 사실 나는 팀원들과 업무 시간에 마주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활하게 팀을 운영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팀원들을 상사로서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맡은 바 업무를 잘할 수 있도록 수평적인 조직 구조에서 도와주는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 관리자의 역할
팀원들의 출퇴근 시간을 체크하고, 근무 시간에 혹시 딴짓을 하지는 않는지 신경쓰는 건 실리콘밸리 관리자의 업무가 아니다. 각자에게 맡겨진 업무를 팀원 스스로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그들에게 꾸준히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관리자의 역할이다.
나도 팀원 각자가 해야 할 일과 스케줄을 명확히 공감시킨 후에 매주 1시간 정도의 주간회의를 진행했을 뿐이다. 회의 전에 팀원들이 주간보고서를 미리 이메일로 제출하기 때문에 그들의 업무 상황을 미리 파악할 수 있고, 미팅시에는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과 핵심 과제들만 간단히 점검하면 됐다.
덕분에 나는 별 걱정없이 팀장으로서의 업무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고, 팀원들도 종일 내 얼굴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지만
그것이 업무 수행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비결은 바로 신뢰, 책임, 그리고 자율
신뢰, 책임, 그리고 자율을 바탕으로 일하는 문화, 바로 이것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할 수도 있는 '평생재택근무'라는 제도가 실리콘밸리에서는 일상이 될 수 있는 비결이 아닐까 한다.
격변의 시대, 이제 우리에게도 결코 먼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글=윤종영
정리=허준 기자 joon@techm.kr
국민대 소프트웨어융합대학원에서 인공지능과 블록체인을 가르치고 있다. 미 스탠포드대에서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고, 15년 넘게 실리콘밸리에서 IT컨설턴트업을 해오면서 실리콘밸리를 깊고 다양하게 체험했다. '응답하라 IT코리아'를 공동집필한 바 있으며, 팁스타운 센터장을 역임하면서 수많은 스타트업들의 성장을 도왔다. 현재 서울산업진흥원 사외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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