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동과 착각이 빚은 민심 이반의 3년 - 김형준(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
[헤럴드경제 2006-02-24 14:17]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지 3년을 맞이했다. 집권 초기 70%에 육박했던 노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도는 20%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다는 참여정부에서 오히려 빈곤층은 늘고 중산층은 무너져 내리고 있다.
서민을 위해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벌이겠다고 공언했지만 전국의 땅값은 이를 비웃듯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참여정부의 무능과 국정운영 실패 속에서 노 대통령 지지계층에서 엄청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2003년 7월 조사 결과,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고 당시 노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노 대통령 절대지지층’은 32.5%였지만 2005년 12월 조사에서는 그 비율이 11.9%로 급락했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외치며 기세등등하게 출범했던 노무현 정부의 국정운영 성적표가 민심이반의 폭발 속에서 왜 이 지경에 이르게 됐는가.
정부와 여당은 수구ㆍ보수언론과 야당의 집요하고 교묘한 ‘대통령 흔들기’와 기득권층의 거센 저항이 원인이라고 항변할지 모른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노 대통령의 인지구조 속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혼동과 착각의 ‘잘못된 인식(misperception)’ 때문이다.
먼저 모든 것을 정치논리로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이다.
현 정부에서는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저성장 등 경제문제를 경제논리보다는 기득권층 해체, 과거 개발독재시대에 형성된 불평등구조 청산과 같은 정치논리로 접근하고 있다. 경제문제를 철저하게 정치논리로 접근하면 합리적인 해결 방안이 도출되지 못한다.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폭될 뿐이다.
또 선거와 통치에 대한 인식의 오류다. 대통령선거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편 가르기와 “반미(反美)면 어떠냐” 등 감성에 호소하는 인기영합의 선동정치가 통용될 수 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대통령은 효율적인 국가관리를 위해 국민과 코드를 맞추면서 통합ㆍ포용ㆍ이성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끊임없이 선거를 치르듯이 통치를 했기 때문에 국정운영에 실패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노대통령 집권 3년 내내 선거를 치르듯이 분열과 대립, 반목이 판을 쳤고 결과적으로 국가경쟁력이 상실돼 국민에너지는 결집되지 못한 채 국정은 표류했다.
다음으로 방향성과 방식에 대한 혼동을 지적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은 ‘방향성만 옳다면 방식이 다소 서툴고 비현실적이라도 괜찮다’는 사고가 깔려 있다. 따라서, 노 대통령은 능력보다는 자신이 추구하는 개혁의 방향성에 동의하는 코드인사만을 중용하고 국민의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해 민심을 얻는 데 실패했다. 잘못된 방식에 의한 개혁은 아무리 방향성이 옳다고 하더라고 정당화될 수는 없다.
집권 4년차를 맞는 새해벽두부터 노 대통령은 ‘양극화 해소’라는 새로운 국가 아젠다를 제시했다.
하지만, 해결책 없는 상습적인 문제제기로는 통치위기가 극복되지 않는다. 알맹이 없는 인기영합의 구호정치가 통치 실패의 근원이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업적 만들기 강박관념’에 빠져 남은 2년 동안 새로운 일을 벌리기보다는 그동안 참여정부가 제기했던 12대 국정과제를 차분하게 마무리해 매듭짓는 정직함을 보여야 할 것이다.
더불어, 그동안의 국정운영 실패를 남의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내 탓이오”를 소리 높여 외치고, 이제 잘못된 인식의 굴레에서 벗어나 ‘거짓 없는 민심’을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혜안을 갖기를 바란다.
이때만이 착각과 혼동으로 점철된 집권 3년을 접고 남은 2년 동안이라도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