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선 칼럼] 헌법 개정안을 둘러싼 일련의 수상한 움직임, 국민이 심판해야 한다. / 이호선(법학부) 교수
중대한 개헌안 공고 서두르고, 전자관보를 일반국민 눈에 안 띄는 '별권'으로 슬그머니 낸 정부
헌법학회장 지낸 모 교수가 의원실 돌며 깜깜이 서명받은 개헌안, 이권 농단 가능성 배제 못해
정부가 지난달 11일 ‘종이’ 관보를 통해 개헌안을 공고하였다는 소식이 한 인터넷 매체의 보도로 뒤늦게 알려졌다. 3. 27. 자 뉴데일리의 기사에 따르면 10일 국무회의를 통과하고 바로 다음날 대통령 공고 제299호로 관보에 게재된 것으로 나와 있고, 해당 관보의 사진도 올라와 있었다. 그렇잖아도 이 개헌안이 언제쯤 공고가 될까 하면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사람 중 한 명으로서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 기사의 제목대로 정부의 공고는 ‘슬그머니’ 이루어졌다고 해도 할 말이 없게 되어 있었다. 정부의 공고는 ‘종이관보’와 ‘전자관보’에 게재함으로써 이뤄지는데, 전자관보 중에서 ‘정호’가 아닌 ‘별권’으로 처리하여 공고를 해 놓는 바람에 일반인들로서는 일부러 신경써서 찾지 않으면 안 되게끔 되어 있다.
법제처의 설명으로는 미리 게재 일정이 잡힌 것 외에 급히 처리해야 하는 것들을 ‘별권’으로 올린다는 것인데, 왜 이 중대한 헌법 개정안 공고가 그렇게 급히 서둘러 관보의 ‘정호’가 아닌 ‘별권’에 수록되었어야 하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일반 법률의 제・개정 및 폐지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중요한 국민발안제도를 담은 헌법개정안, 그것도 쿠데타에 가까운 방식으로 시도된 행태로 인하여 국민과 언론의 비판이 비등한 상태에서 비정상적으로 관보 게재를 서두른 것은 헌법 개정안 발안 과정부터 수상쩍은 행위로 일관하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당초 이 헌법 개정안은 국회의원 148명의 서명을 받아 국회에 제출되는 과정에서부터 문제가 있었다. 1987년 개헌 이래 33년만에 개헌안이 제출되는 과정에서 아무런 보도자료나 기자회견도 없었다. 다만, 그 후의 언론 보도에 의하면 4.15 총선에서 선거와 함께 국민투표에 붙일 계획이라고만 알려졌다.
그리고 나중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국회의원들의 서명 과정에 헌법학회장을 지낸 서울 시내 사립대 모 교수가 국회의원실을 돌아다니며 직접 서명을 받아 제출하였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렇게 서명한 의원은 그 개헌 추진 배후에 어떤 단체, 어떤 정당이 주를 이루었고, 서명을 받아내기 위한 역할 분담이 있었는지도 전혀 몰랐다고 한다.
이 서명을 주도한 측에서는 국민투표를 위해서 거쳐야 하는 국회 본회의 표결이 사실상 총선 국면으로 넘어가면 불가능하므로 3. 26. 총선 후보자 등록 이전에 대통령 공고 절차를 마쳐 놓아야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개헌안 공고를 무리하게 별권에 게재한 그 이면에는 이러한 세력의 일정이 자리잡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이번 개헌안 파동이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기를 바라지만, 객관적으로 지금 헌법을 농단하는 이권 세력의 몰염치와 탐욕을 보면 헌법을 독살하는 찻잔 속의 독약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선거가 헌법을 지키는 선거가 되지 않으면 조만간 대한민국은 한 줌도 안 되는 무리들이 마음대로 헌법 체계까지 뒤흔드는 암흑의 시대로 접어들 것이다.
이호선 객원 칼럼니스트(국민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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