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민심이반의 법칙 / 김형준(정치대학원)교수

  • 작성일 05.06.07
  • 작성자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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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05-06-06 17:54]


4·30 재보궐선거 참패와 러시아 유전, 행담도 개발 등 각종 의혹 사건들이 터져 나오면서 정부·여당에 대한 민심 이반이 가속화되고 있다. 대통령 국정운영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고, 우리당의 지지도도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최근 우리당, 정부, 청와대는 공동으로 워크숍을 개최해 유기적인 협력체제 구축을 결의했지만 여권내 갈등은 봉합되지 않은 채 오히려 심각한 파열음만 증폭되고 있다. 급기야 여당 내부에서 “참여정부의 이상주의적 정책이 문제”라고 대통령의 국정운영 기조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이 제기되었고, “현 위기의 근본 원인은 당이 아니라 청와대의 무능과 월권 때문이다“는 주장이 탄력을 받고 있다. 우리당은 청와대의 대대적인 인적쇄신과 대통령 자문위원회 개편, 당정분리의 재정립 등을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처방은 통치 위기의 근본 원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에 기초했다기보다는 지극히 아마추어적이고 즉흥적이다.
한국정치에는 일관성 있게 반복되는 민심 이반의 검증된 경험적 법칙들이 있다.

첫째, 망각의 법칙이다. 선거 과정에서 국민들에게 약속한 것을 집권과 더불어 능력이 따르지 못하거나 또는 의도적으로 무시하면서 잊어버리는 행위이다.

우리당은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당‘을 표방하면서 등장한 신흥 정치세력이다. 하지만 집권 2년이 지난 현재 이러한 대국민 약속은 철저히 버림받고 있다. 이는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소득 양극화로 서민과 중산층이 절망하고 고통받고 있는 데서 잘 나타나 있다. 우리당이 최근 실시한 정체성 관련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에 비해서도 비서민적인 정당으로 조사됐다.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당이 어디라고 생각하는가”라는 항목에서 우리당(20.3%)은 민노당(29.3%)과 한나라당(24.3%)에 이어 3위로 밀려났다. 현 통치 위기의 핵심에 ’위장된 서민정당‘으로 전락한 우리당의 정체성 위기가 자리 잡고 있음이 명확해졌다.

둘째, 환각의 법칙이다. 대통령 측근과 여당은 ‘대선불패 신드롬’의 환각에 빠져 있다. “정부 여당이 지금은 죽을 쓰고 있지만 막판 뒤집기로 대선 승리가 가능하다“는 믿음이 이러한 신드롬의 요체이다. 최근에 실시한 국민여론 조사 결과는 이러한 믿음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고, 17대 총선에서도 우리당을 지지했던 ’핵심 지지층‘ 중 현재 우리당을 지지하는 비율은 38.8%에 불과한 반면,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는 비율이 무려 50.5%에 달했다. 우리당 핵심 지지층 2명중 1명이 이탈하고 있다는 뜻이다. 대선불패 신화의 허황된 믿음으로 ‘우리당 이탈 도미노 현상’의 원인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 통치 위기를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셋째, 혼동의 법칙이다. 대통령과 여당은 선거게임과 통치게임을 혼동하고 있다.

선거에서는 승리를 위해 편가르기와 인기영합의 선동이 통용될지 모르지만 통치에서는 오로지 국민통합과 정직이 우선해야 한다. 민주화 이후 역대 모든 정부의 실패는 선거 치르듯이 통치를 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알맹이 없는 인기영합의 구호정치가 통치 실패의 근원이다. 상습적인 국면 회피용 워크숍 정치로는 통치 위기가 극복되지 않는다. 당정청은 상대방을 탓하기 전에 ‘내 탓이요’를 소리 높이 외치고 망각·환각·혼동의 굴레에서 벗어나 초심으로 돌아가 국정운영의 틀을 새롭게 짜라.

김형준/ 국민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