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호의 눈]고소·고발사건 선별입건법제 필요하다 / 윤동호(법학부) 교수
한국은 고소·고발공화국으로 불리기도 한다. 과장된 표현이지만 고소·고발이 남용·남발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국민성, 사법제도, 처리 실무, 통계 산출방식 등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일본에 견줘 심각하다. 2010년 인구 10만 명당 피고소인원이 한국은 1068.7명인 반면 일본은 7.3명으로 146.4배 차이가 났다. 그 격차는 더 벌어졌다. 2018년에 한국은 1172.5명인 반면 일본은 5.4명으로 217배 차이가 났다.
한국의 ‘남(濫)고소’의 결정적인 원인은 고소·고발인의 말 한마디로 피고소·고발인을 ‘피의자’로 전락시켜야만 하는 법제에 있다.
현행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고소·고발사건을 받은 경찰은 신속히 조사해 관계서류와 증거물을 검사에게 송부해야 하고(제238조), 고소·고발사건을 받은 검사는 받은 날부터 3개월 이내에 수사를 완료해 공소제기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제257조). 수사기관은 고소·고발을 당한 사람을 반드시 조사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조사를 위해서는 피고소·고발인을 공식적인 수사절차의 대상으로 세울 수밖에 없다. 흔히 입건(立件)이라고 한다. 입건된다는 것은 ‘피의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소·고발사건 전건(全件)입건법제인 것이다.
고소·고발이 터무니없고 불합리하거나 악의적인 것일지라도 피고소·고발인은 피의자로서 형사 절차에 연루되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 경찰서에 조사받으러 나와달라는 전화를 받는 순간 무슨 일인가 걱정하면서 내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인가 자책도 하고 식사를 거르기도 한다. 일상생활에 문제가 되기도 한다. 어떤 피의자는 수사기관에서 조사받을 때가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고 한다. 언제 조사를 받으러 나오라고 할지 모르는 기다림의 고통이 큰 것이다. 피의자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도 고통을 받는다.
고소·고발사건 전건입건법제는 ‘고소·고발부터 하고 보자’는 법문화를 낳았고, 민사사건의 형사화 경향을 가져왔다. 고소·고발로 절차적 고통을 줌으로써 민사분쟁의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피고소·고발인을 압박하고, 형사 절차에서 드러나는 서류나 수사기관이 작성한 조서를 민사재판의 증거로 확보한다. 그런데 이런 법문화와 경향에는 8·15해방 이후 한국 정부에 이양된 ‘귀속재산’의 불하 문제를 두고 벌어진 민사분쟁에서, 검찰권이 탄생할 때부터 기소재량권에 터잡아 조정자 내지 해결사 역할을 해온 검찰에도 원인이 있다.
논란 끝에 올해 2월 4일 개정된 형사소송법은 경찰이 고소·고발사건을 조사한 후 범죄혐의가 인정되지 않으면 검사에게 송치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고 있으나, 이로 인해 고소·고발사건 전건입건법제가 바뀐 것은 아니다. 이는 경찰에게 1차적 수사종결권 또는 불송치권을 부여한 것이지, 고소·고발사건을 입건하지 않을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은 아니다. 수사기관이 고소·고발사건을 접수했더라도 내사를 해 범죄혐의의 유·무나 경·중을 가려서 선별적으로 입건하도록 하는 형사소송법의 개정이 필요하다.
원문보기: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24&artid=202002141548561&pt=nv
※ 게재한 콘텐츠(기사)는 언론사에 기고한 개인의 저작물로 국민대학교의 견해가 아님을 안내합니다.
※ 이 기사는 본교 소속 구성원이 직접 작성한 기고문이기에 게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