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하다. 선수들도 열심히 뛰고 있고 심판들도 분주한데 무슨 경기를 하는지 분명하지가 않다. 유례없이 규칙을 잘 지키고 있다는데 경기가 재미없다. 선거가 이 정도 치러지면 됐지 무슨 불만이냐고? 그렇다. 탄핵 역풍이 거셀 때만 해도 선거가 날아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탄핵을 말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는 편이 나라의 안녕을 위해서 다행이기도 하다.
그래도 속이 편치 않음은 웬일일까? 선거가 이렇게 재미없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탄핵이었고, 탄핵은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후보자들을 도우려다 벌어진 일인데 정작 법정 선거운동이 시작되자 탄핵은 선거쟁점의 자격을 박탈당하고 말았다. 그런데 모두들 무슨 일 있었느냐는 듯이 딴청을 부리고 있으니 알고 그러는 것인지 모르고 들 그러는 것인지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탄핵이 일종의 터부가 돼 버린 셈인데, 우리에게 무엇인가 속내와 다른 이중적 생활을 강요하고 있다. 탄핵의 역풍을 너무 노려도 미운털이 박히고, 탄핵이 뭐 그리 잘못된 것이냐고 항변하면 아직도 정신 못 차렸느냐고 철퇴를 맞을 판이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지역바람을 보자.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에 호소하던 시기를 지나서 지역정서를 이야기하는 것조차 불편한 세상이 되었지만 지역주의는 영호남 지역주의에서 충청지역주의로, 감정지역주의에서 정책지역주의로 색깔을 바꿔 가며 잠행하고 있다. 터부의 정치가 이렇듯 속병 들게 하는 줄 모르겠으면 선거철에 계절풍처럼 불던 북풍을 상기해 보면 된다. 북풍을 가능하게 한 것도 금기의 정치였다. 북쪽과 관련 있는 것을 말하고 북쪽을 생각나게만 해도 죄가 됐던 시절의 정치, 그리 멀지 않은 우리의 과거다.
탄핵바람이 지역바람이나 북풍처럼 구조적으로 우리를 옥죌 것 같지는 않지만 많은 문제를 그 안에 배태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탄핵은 불랙홀이 되어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동시에 모든 것을 은폐한다. 우선 탄핵을 '바람'으로 만든 실체가 은폐된다. 탄핵행위의 '실체'와 바람이라는 '현상' 사이에 작용한 거대한 대중조작의 메커니즘이 권위주의 체제 아래에서보다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런 문제가 선거철에도 거론되지 못하니 선거 후에는 더 기승을 부릴 것이다.
다음으로 선거쟁점이 왜곡되고 있다. 탄핵이라는 대사건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선거가 얼마나 달라졌을까? 오히려 더 험악하고 더 혼탁하고 이전투구(泥田鬪狗)였을 가능성이 크다. 탄핵은 탄핵 이전의 정국을 반영한 것인데 그때의 여야 간 대립각은 우리가 선거철을 맞아 뜬금없이 기대하는 민생문제가 아니라 권력을 이동시키느냐 마느냐로 세워진 것이었다. 17대 총선은 그 권력 이동의 실험실이다. 어떤 권력에서 어떤 권력으로 넘어가는지, 어떤 방법으로 넘어가려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도 하지 않고, 천막 치고 공판장에 세 들어 살며, 노란색에 파란색으로 도배하는 현실은 선거쟁점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끝으로 선거과정에 관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탄핵도 선거법 위반 때문에 생긴 일이다. 대통령이 그런 정도의 발언도 못 하느냐는 것인데 당연히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러려먼 먼저 법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이 순서다. 대통령과 견해를 같이 하는 많은 국민이 있고 집단이 있으니 더 더욱 그렇다.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는 현행 선거법이 당연히 선거의 쟁점이 되어야 하지만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지금은 선거 규제의 시대이고, 선거운동의 자유는 금기시되기 때문이다.
이제 투표가 사흘밖에 남지 않았다. 남은 시간에 한 가지 확실히 해 두자. 과반수가 되든 안 되든, 개헌저지선이 확보되든 안 되든 탄핵을 불러온 말과 몸의 폭력, 다수파와 소수파의 폭력을 선거 이후에는 더 이상 봐 줄 수 없다는 것을. 권력의 이동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하라는 것을. 그리고 금기 뒤에 숨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싸우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