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파 공작원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실미도’가 한국 영화 최고 흥행작의 기록을 세운 가운데 시인 신대철씨(59·국민대 교수·국문학)가 북파 공작에 참여했던 자신의 체험을 글로 고백해 화제가 되고 있다.
신 교수는 이달 중순 출간될 계간 ‘창작과 비평’ 봄호에 에세이 ‘실미도에 대한 명상’을 발표할 예정이며, 이에 앞서 2001년 같은 잡지 가을호에 시 ‘실미도’를 싣기도 했다.
‘그 사이사이 문신만 남은 그대들은 누구인가/아무 연고자 없이 전과자로/뒷골목으로 감옥으로 전전하다가/실미도로 끌려온 그대들은?/단두대 같은 수평선에 목을 걸고/무엇으로 하루살이 악몽을 넘기고 싶었는가/누구의 조국, 누구의 통일을 위해/그대들의 피를 씻고 씻으려 했는가’(‘실미도’ 중)
ROTC 출신 장교로 군에 복무할 때 신 교수는 비무장지대 GP(Guard Post·감시초소) 책임자였다.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그는 GP를 총괄하면서 임시로 대북 방송원고를 썼으며 때로 안전소로(安全小路)를 통해 군사분계선을 넘어갈 수 있도록 북파 요원들을 안내했다고 말했다.
“내가 만난 북파 공작원들은 얼굴이 깡마르고 강하게 단련된 사람들이었어요. 처음에는 서로 얘기도 안 하지만 같이 안전소로를 통해 지형 정찰하러 다니다보면 서로 정이 들게 되죠. 그러다 천둥 번개 치는 새벽에 공작원들이 북파되는데 서로 격렬하게 포옹하고 헤어져요. 다시 못 만날지도 모르고, 한 번 가면 잘 안 돌아왔어요. 그때 그 충격이…. 왜냐하면 넘어간 그 사람도 죽은 거지만, 그 사람 때문에 누군가 또 죽잖아요.”
그는 자신이 ‘분단의 씨앗을 키웠다는 자책감’(2002년 ‘백석문학상’ 수상 소감)에 밤마다 악몽을 꾸었고, 제대로 시를 매듭짓지 못했다. 신 교수는 1979년 미국 아이오와대 국제창작프로그램에 참여했고 90년 알래스카대 교환교수로, 97년 몽골대 교환교수로 고비사막과 초원을 돌아다녔다.
신 교수는 “시 ‘실미도’를 쓰면서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고 말한다. 그는 또 에세이에서 “영화 ‘실미도’는 단순한 블록버스터형 액션물에 지나지 않는다”며 “그저 단순한 폭도들의 감상적인 자살극 같다. …하지만 영화가 흥행에 성공해 잊혀졌던 분단상황에서의 비극적 사건에 관심을 집중시킨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