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DT 시론] 시민 영웅을 기다리며 / 김현수(비즈니스전문대학원)교수

  • 작성일 04.02.03
  • 작성자 디지털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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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2월 02일 (월) 10:57

김현수 한국SI학회 회장, 국민대 교수

심화되는 국정의 난맥상과 권력층의 부도덕함과 과도한 집단 이기주의 등을 보면서 우리의 역사가 한 시대를 마감하고 혼란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역사가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로 이전되기까지는 몇 가지 과정을 거친다. 기존 질서가 해체되는 과정이 선행되며, 새로운 질서가 나타나는 과정이 있고, 새로운 질서가 정착되는 과정이 진행된다. 현재의 혼란 시기를 거쳐 새로운 질서가 조만간 나타날 것이고, 새로운 시대의 가치 체계와 그 구조가 어떠하냐에 따라 국가의 장기적인 명운이 결정될 것이다.

새로운 질서를 도출하고 정착시키기 위해 과거의 역사에서는 소수 인재들의 역할이 중요하였다. 고려에서 사대부의 조선이라는 새로운 체제로 이전될 때는 정도전이나 하륜과 같은 인재들의 역할이 필요하였고, 근세 일본에서는 사카모토 료마나 사이코 다카모리와 같은 인재들이 메이지 유신을 통해 새 시대를 열어 주었으며, 현대 중국은 손문과 모택동과 등소평 등을 통하여 세계의 중심으로 발전해가고 있다.

본디 초목 중에 눈에 띄게 아름다운 것을 영(英)이라 하고, 짐승 중에 특별히 우수한 것을 웅(雄)이라 한다. 문무의 재능이 동시에 뛰어난 사람을 영웅이라고 하는데, 지혜가 뛰어난 사람을 영재라 하고, 용기가 출중한 사람을 웅재라 하기 때문이다. 웅재는 담력도 있고 행동을 뒷받침해주는 용기도 갖추고 있지만, 사물을 판단하는 지혜가 부족하여 선봉에 나설 수는 있지만 지도자가 될 수는 없다. 영재는 지모로서 일을 시작하고 기회를 식별할 줄도 알지만 용기와 추진력이 모자라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영웅은 영재와 웅재를 두루 갖추어 총명함으로 미래를 예지하고 지혜로 사물의 핵심을 파악하고 힘과 용기로써 새로운 세상을 열고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소수 영웅의 시대는 가고 이제 보편적 시민의 시대가 되었다. 이제는 시민들이 영웅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혼란의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영광의 역사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민 영웅들이 필요하다. 긴 역사의식을 가지고,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지사이면서, 영웅의 자질을 갖춘 시민들이 많이 필요하다. 그런데 최근의 우리는 자꾸만 작아지는 것은 아닌가? 작은 이익에 집착하고, 작은 인연에 집착하고, 작은 폭력 앞에 과도하게 위축되는 것은 아닌가? 웅재를 겸비하지 못한 영재들만 많은 것은 아닌가? 영재가 모자라는 웅재들이 좌충우돌하며 세상의 혼란을 더욱 가중시키는 것은 아닌가?

맹자는 등문공편에서 `지사(志士)는 의(義)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시체가 도랑이나 골짜기에 버려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사(勇士)는 의를 행하기 위하여 자기의 목이 달아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진정한 지사와 용사들이 우리의 정치판과 권력층에 많은가? 그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정의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이 버려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인가? 국가의 발전과 서민들의 행복 보장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 달아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인가? 정치의 계절일수록 황량한 바람만이 우리 시민들의 빈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우리 시민들이 영웅이 되어야 한다. 지혜롭고 용기 있는 훌륭한 시민 영웅이 되어야 한다.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은 국난을 겪을 때 마다 국민들이 나라를 구해왔다. 그 훌륭한 전통을 오늘날 시민 정신의 회복으로 되살릴 필요가 있다. 국가 성장 동력의 회복과 심화되는 빈부격차의 완화, 청년실업의 해소, 사회 도덕성의 정립 등을 위해 각 분야별로 영웅들의 땀과 눈물이 요구된다. 정치인은 정치인으로, 공직자는 공직자로서, 경제인은 경제인으로서 각기 역사에서 부여받은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우리 시민 영웅들이 이들을 견제하고, 질책하고, 이끌어주어야 한다. 시민의 시대가 될수록 영웅이 그리워진다. 훌륭한 시민이 가장 위대한 사회를 열 수 있다. 우리 모두 시민 영웅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