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을 유심히 보자.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전 ‘제공’이라는 자막과 함께 광고주의 이름이 나온다. 방송 프로그램을 시청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광고주들이다.
방송법에는 전체 방송시간의 10%에 해당되는 시간에만 광고를 하도록 허락되어 있다. 프로그램 중간에 광고하면 효과는 더 좋겠지만 국내에서는 중간광고가 금지돼 있으며 프로그램 내에서 상품명을 보여주는 간접광고도 금하고 있다. 방송 프로그램이 광고에 의해 영향을 많이 받게 되면 방송의 상업화가 노골화될 우려가 커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방송을 보면 ‘00 제공’이라며 공식적으로 이름을 밝히지 않은 비밀 광고주들이 노골적으로 중간광고 하듯 간접광고를 하고 있다. 외주 제작사(독립프로덕션)에서 만든 프로그램의 협찬사들이 그들이다. 이들은 정해진 광고시간이 아니라 프로그램 내에서 은밀하게, 그러나 더 확실하게 광고를 한다. 마치 광고를 위해 프로그램을 만든 것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최근 방송위원회에서 지적받은 협찬주의 간접광고 행위는 다양하다. 특정 상품명을 조금씩 보이도록 하는 방식은 ‘아마추어’에 불과하다. 드라마에서는 특정 상표명을 조금 바꾸다 못해 아예 드러내놓고 방송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영화관 ‘메가박스’는 ‘세가박스’(SBS 드라마 ‘스크린’)로, 의류 브랜드 ‘So Basic’은 ‘So’(MBC 드라마 ‘내 인생의 콩깍지’)로, 학습지 ‘웅진씽크빅’은 ‘웅진씽크북’(MBC 드라마 ‘좋은사람’)으로 조금씩 바뀌어 프로그램에 얼굴을 내민다.
이런 사정에는 외주제작사의 기반이 취약하니 협찬을 받도록 해 경제적으로 도와주자는 뜻이 담겨 있다. KBS MBC SBS 본사에서 제작하는 것은 장소나 인물 섭외가 쉽게 이뤄지지만, 외주제작사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니 협찬이라도 받게 해주자는 취지다.
그런데 최근에는 협찬사들이 마지막 자막이 올라갈 때 회사명을 고지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프로그램 내용에 간접광고를 하려고 지나치게 욕심을 내는 것 같다. 프로그램 앞뒤 광고에 만족했던 정상적인 광고주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할 노릇이다. 즉 프로그램 내 협찬 광고가 늘어나면 시청자의 입장에서 외주제작인지 본사제작인지 구분되지 않는 상황에서 광고의 홍수라는 인상을 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외주 제작사들 중 명목뿐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본사에서 제작하면 협찬을 못 붙이지만, 외주제작사를 하나 설립해 이를 통해 프로그램을 만들면 외주제작률도 높이고 협찬도 붙일 수 있어 방송사들로선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다는 것이다.
방송위원회의 협찬고지에 관한 규칙 제5조에 의하면 ‘방송사업자는 협찬주에게 광고효과를 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제작 구성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규칙은 광고시장을 제대로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게임 룰’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