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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韓·日 관계 전기 삼아야 할 아베정권 출범 / 이원덕 국제학부 교수

  • 작성일 06.09.01
  • 작성자 조영문
  • 조회수 5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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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韓·日 관계 전기 삼아야 할 아베정권 출범

9월 중에 고이즈미(小泉純一郞) 총리가 물러나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신정권 등장이 확실해짐에 따라 향후 한·일 관계의 향배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아베는 이념적으로 우파 성향이 농후한데다 우리에게 거슬리는 언행을 거침없이 함으로써, 그가 집권하면 한·일 관계가 한층 악화될 공산이 큰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아베는 국회에 진출한 1993년 이래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 참배, 역사교과서, 군사·안보정책, 평화헌법 그리고 대(對)북한 정책 등 우리의 핵심적 관심사항에 대해 강경한 자세를 견지해왔다. 이런 태도가 곧바로 구체적인 정책으로 표출된다면 적지 않은 마찰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 신정권의 외교가 주변국과의 충돌을 불사하면서 강경 일변도로 치달을 것으로 예단하는 것은 성급하다. 아베 정권은 대미동맹의 강화와 군사적 보통국가 노선을 지향하는 한편 평화헌법 개정을 위한 환경 정비에 힘쓸 것이다. 이러한 지향은 아베 개인의 정치이념을 넘어서 일본 내에서 국민적 합의를 얻고 있는 외교의 방향성이기도 하다. 동시에 아베는 고이즈미 외교의 부정적 유산을 극복하지 않으면 정치대국의 야망을 실현하기 어렵다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무모하리만큼 고집스럽게 야스쿠니 참배를 강행해 온 고이즈미와는 달리 아베는 헝클어진 근린(近隣) 외교를 복원하기 위해 적어도 당분간은 야스쿠니 참배를 자제할 것으로 예측된다. 일본 국민은 야스쿠니 참배가 주변국의 외교적 압력에 굴복하는 형태로 중단되기를 바라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참배 강행으로 일본이 외교적 고립을 자초하는 것은 더더욱 원치 않는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아베의 근린 외교가 우파적 이념 성향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유연성을 발휘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무릇 외교는 국내외 현실 상황에 대한 냉정한 계산에 입각해서 국익 최대화를 꾀하는 대외적 선택 행위라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초 보수 반공주의자로 알려진 닉슨 미국 대통령은 공산 중국과 전격적인 데탕트 외교를 감행했다. 일본 보수의 원조 격인 나카소네(中曾根康弘)전 수상은 취임 직후 한국을 전격 방문함으로써 관계 수복을 시도하였고 이어 중국과 한국이 반대하는 야스쿠니 공식참배를 철회하였다. 아베는 대북 강경 노선으로 일약 거물로 부상한 스타 정치인이지만 경륜이 짧고 지지기반이 그다지 탄탄하다고는 할 수 없다. 사실상 그가 정권을 안정적으로 끌고 갈 수 있을지 여부는 내년 7월에 치러질 참의원 선거의 결과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렇게 볼 때 아베 정권에도 대(對)한국 외교의 성패 여부는 중요한 정치적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한·일 관계는 2005년 봄 이후 독도, 교과서, 야스쿠니 문제로 최악의 경색 상태가 유지되고 있고 설상가상으로 최근에는 대북 정책을 둘러싼 불협화음까지 더해 개선의 실마리를 풀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정상 간 셔틀외교가 중단됨으로써 한·일 간에는 정치적 냉기류가 지속되어 경제·문화 영역에까지도 악영향이 파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 문제와 관련하여 미사일, 핵 문제 등으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일본과의 대북 정책 공조기반 마련은 우리로서도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차기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중단이라는 단일 조건을 내걸고 일본에 러브 콜을 보내고 있는 중국의 태도는 주목할 만하다. 5년여 만에 찾아온 일본의 정권 교체를 계기로, 원칙적으로 할 말은 하되 그간의 서먹한 관계를 복원하여 실리를 극대화할 수 있는 대일정책의 지혜 발휘가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