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년 동안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어온 ‘학벌주의’와 관련하여 서울대가 자주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서울대란 이름은 수십만 수험생들과 그 학부모들에게 가슴 벅찬 꿈인 동시에 학벌주의의 상징적 구심이라는 부정적 평가도 항시 따라다녔다. 특히 국립대로서의 존재 의미에 대한 물음이 시민단체는 물론 서울대 내부에서도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이에 대해 서울대의 공식적인 반응은 거의 없었다. 이러한 문제제기에 반응하는 것이 별로 득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최근 서울대측에서도 더 이상 침묵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과격한 시민단체의 구호로나 등장했던 ‘서울대 폐지’가 제3당이 된 민주노동당의 공약사항으로 등장하고, 공공연히 방송과 언론에서 국공립대 공동학위제 등이 진지하게 논의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서울대 정운찬 총장은 그간 서울대가 누려 왔던 민족의 대학이라는 국민적 자부심과 선망이 이제 기득권의 표상 정도로 폄하되기에 이른 현실에 대해 절박감을 표현하고, 서울대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근본적인 개혁에 나서지 않을 수 없음을 서울대인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 안팎서 개혁목소리 고조 -
명실공히 우리나라의 최고 대학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버텨온 서울대로서는 공공연히 서울대의 해체니, 폐지니 하는 섬뜩한 단어가 나도는 현실에 당혹감을 느낄 법도 하다.
학벌주의라는 애매모호한 사회현상에 대해 왜 서울대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가라고 되물을 법도 하다. 그러기에 서울대 해체론을 ‘마녀사냥’에 비유하는 내부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어느 분은 학벌주의의 원인자로 서울대를 지목하는 것은 태아 감별의 원인을 국민의 남아선호 사상에서 찾지 않고 태아를 감별하는 병원의 존재에서 찾는 것과 같다고도 한다. 일리 있는 항변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서울대는 이러한 서울대 해체론 등이 심각한 논의의 대상이 되는 현실을 국립대학으로서의 존재 의미를 분명히 하는 계기로 삼아야 마땅하다.
그렇다고 민노당이나 일부 시민단체에서 주장하듯이 서울대가 가진 독점적 지위가 문제의 근원이라며 국립대 평준화 등으로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관리체제를 강화해 보려 하는 것은 문제의 올바른 해결방향이 아니라고 본다. 그것은 우리의 고등교육을 실패가 예견되는 사회주의적 실험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반면 정총장이 “서울대뿐만 아니라 연세대, 고려대도 오히려 엘리트 양성을 위해 서로 경쟁해야 한다”고 말한 것을 보면 여전히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고등교육의 문제는 대학의 고착된 서열화로 대학간에 진정한 경쟁의 환경이 조성되지 못한 데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국민의 세금을 갖고 등록금을 덤핑하고, 국유지를 무상사용하고, 각종 세금감면 혜택을 받으며 사립대학에 비해 부당한 경쟁우위를 누리고 있는 서울대의 존재 모순이 있다. 게다가 아직 관존민비, 국가주의의 잔영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 사회에서 ‘국립’이라는 모자를 씀으로써 누리는 우월적 지위도 무시할 수 없다.
이제 서울대는 국립대로서 민간과 경합하지 않는 고유한 공공적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 예컨대 철저히 복지적 역할을 하는 대학, 또는 국민의 평생교육기관이 되든지 말이다.
또 하나는 유수한 사립대학들과 경쟁하는 길인데, 이 길에 들어서려면 먼저 민간과의 공정한 경쟁조건을 받아들여야 한다. 즉 국가의 물질적·이념적 후견을 과감히 내던지는 것이다. 이런 결단없이 경쟁을 부르짖는다면 그것은 현재의 부당한 독점적 지위를 놓지 않겠다는 수구적 자세라고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 사립대와 경쟁 공정하게 -
서울대는 내년도 입학정원을 14%나 감축하기로 하는 등 뼈를 깎는 자기혁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세계화시대의 흐름은 그 이상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국립이라는 모자를 벗는 것이다.
국가기관으로서 민간과 경쟁하며 그 위에 군림하는 부정의한 상황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서울대가 공정한 경쟁의 승자가 될 때 우리 사회는 서울대의 권위에 승복하고 그것을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