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제휴 제안에 당당하게 “아니오” / 배인식 그래텍 대표 (금속 86)
[한겨레]
“삼성전자가 최근 미국 와이브로 서비스에 진출하면서 제휴를 권했지만 거절했습니다.”
곰플레이어로 유명한 그래텍 배인식(38) 대표의 설명이다. 국내 기업 중 삼성전자의 제휴 제안을 거절할 만한 배포(?)를 갖고 있는 기업이 몇이나 될까? 그래텍은 당당하게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몇개 회사 중 하나다. 이같은 자신감은 그들이 갖고 있는 핵심 기술에서 나온다. 그는 “삼성과 제휴를 하면 중요한 개발자들을 거기에 투입할 수 밖에 없다”며 “최근 출시한 서비스들이 가야 할 길이 먼데 다른 일에 신경쓰면 곤란하다”고 거절 이유를 설명했다.
배 대표는 어렸을 때부터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며 자라온 ‘컴퓨터 세대’다. 대학시절부터 같이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동료들과 지난 1999년 그래텍을 창립했고, 이후 입사한 직원들 역시 비슷한 경험의 소유자들이다. 기술인력이 모인 회사답게 신기술을 개발해 사용자들이 소비할 때 느끼는 희열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곰플레이어는 7월 현재 6천만번의 내려받기, 하루 사용자 340만명을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성공은 배 대표의 남다른 안목이 큰 몫을 했다. 그는 웹 브라우저 안에서 네이버, 다음 등 포털 사이트와 경쟁하기 보다는 다른 분야에서 승부를 걸었다. 기술적 우위를 바탕으로 소프트웨어를 무기로 삼았다. 결국 높은 컴퓨터 기능을 요구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미디어플레이어(WMP)와 맞붙어, 지난 7월 승리했다. 사양이 낮은 컴퓨터에서도 구동할 수 있으며, 통합 코덱, 손상된 파일 재생막 찾기 등 특화된 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가 최근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었다. 곰플레이어를 무료로 동영상을 손쉽게 볼 수 있는 곰티브이로 변화시킨 것이다. 지난 4년 동안 준비해 지난 3월 선보였다. 출시 이후 받는 질문이 ‘많이 쓰느냐’에서 ‘수익모델이 뭐냐’로 바뀌었다는 배 대표는 “최근 동영상 열풍 등으로 3개월 만에 1년치 매출 목표를 달성했다”며 “포털 사이트 방문자들과는 달리 ‘동영상’이라는 목적을 갖고 곰플레이어를 이용하는 사용자 340만명이 큰 재산”이라고 설명했다.
나날이 성장하는 만큼 고민도 따라온다. 최근 통신과 방송 융합 논쟁에 곰티브이도 끼어들었다. 배 대표는 “곰티브이는 방송과 다른 생태계에서 활동하고 있다”면서도 “공익적 책임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그 룰을 따르겠다”고 말했다. 다만 “그 룰을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며 “음성적으로 동영상을 소비하는 네티즌들을 양지로 끌어들이는게 우선”이라고 설명했다.
배인식 대표가 돈 되는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올 하반기에는 곰플레이어의 ‘아카데미 버전’을 내놓는다. 학교에서 곰플레이어가 학습용으로 쓰이는 것을 알게 된 후 광고, 뉴스 등 학습에 저해되는 콘텐츠를 배제한 모델을 제공할 예정이다.
그는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연히 수익성을 생각해야 하지만, 다른 기업이 시도하기 어려운 것을 시도해 볼 수 있는 그런 기업이 되고 싶다”고 웃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한겨레 2006-08-14 1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