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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은행 담보물은 당나귀 / 안드레이 랑코프 (교양과정부) 교수

  • 작성일 08.01.04
  • 작성자 조영문
  • 조회수 17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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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이 영문으로 된 책이다. 책이 배달된 것은 두어주 전이나 처음엔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한국을 영문으로 소개한 책 치고 우리가 읽을 만한 게 얼마나 있었던가 하는 선입견 탓이다. 하지만 지난 주말 쌓인 책들을 정리하며 이 책을 뒤적이다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한국 최초의 사진기(1871), 한국인 최초의 유학(1881), 최초의 전화(1882), 최초의 신문(1883), 최초의 인력거(1884) 등 이 땅에 최초로 들어온 것들을 소재로, 이것들이 처음 시작될 때의 풍경과 그 발전 과정을 에피소드 중심으로 풀어나간 근·현대 150년사가 재미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책은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를 찬찬히 살피고, 성매매는 불법화됐으나 홍등가는 계속 불을 밝힌 1940년대와 키스 영화가 처음 만들어진 1950년대, 중·고교 입시가 폐지된 1960년대를 거쳐,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에 대거 들어오는 1990년대까지 이어진다. 저자는 러시아 태생으로 레닌그라드대학에서 한국사와 중국사로 학위를 받은 뒤 호주 국립대 교수를 지낸 이력을 지닌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

이 책의 첫째 미덕은 재미있다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책에 쓰인 사료는 엄숙하고 딱딱한 정사라기보다 당시의 신문이나 대중 잡지 등에서 가져온, 날것들이 대부분이다. 전화가 왕궁에 처음 가설된 뒤 가장 중요한 용도 중의 하나가 고종이 민비의 능에 안부를 묻는 것이었다는 이야기도, 한국 최초의 근대 은행이 처음 대출할 때의 담보물이 당나귀였다는 이야기도, 서울에 첫 등장한 전차의 선로가 노숙자가 베고 자기에 안성맞춤인 바람에 운전자가 사고를 막기 위해 노심초사했다는 이야기도…, 자꾸 책장을 넘기게 만든다. 마치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 (1999, 김진송 지음, 현실문화연구) 영문판을 읽는 느낌이랄까.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가 그랬듯이, 책을 읽으며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과 같은 생활 양식과 도시 풍경, 그리고 생각의 틀을 형성하게 됐는지 알게 되는 것은 책의 보다 더한 미덕이다.

무엇보다 이 책을 여기에 소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소개하는 이 정도의 영문 책이 한국의 출판사에서 상업용으로 나왔다는 점 때문이다. 책은 영문으로 돼 있지만,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룬 어떤 한글 책과 겨뤄도 경쟁력이 있어 보인다. 비교적 쉬운 영어로 씌어진데다 우리 역사를 다룬 책이어서 영문 책을 읽은 지 오래된 직장인이나 이제 영문 책 읽기에 눈뜬 학생들이 읽기에도 부담이 없다. 물론 우리 말을 잘 모르는 외국의 지인에게 선물할 한국 근·현대사 책으로도 추천할 만하다.

출처 : 문화일보|기사입력 2007-12-28 15:00 |최종수정2007-12-28 16:30
원문보기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etc&oid=021&aid=0000219910